석양처럼

 




명예교수회 사무실 창은 서쪽을 향해 있었다.

늦가을 오후의 빛은 늘 비슷한 시간에 들어왔지만 

날마다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날은 얇아서 책장 유리 한쪽만 희게 핥고 지나갔고,

어떤 날은 오래 익은 감빛으로 회의용 탁자 위를 천천히 건너갔다.

그날의 빛은 느렸다.

 

책장에 한 번 걸렸다가 소파 팔걸이에 잠깐 머문 뒤,

끝내 들고 온 말을 하지 않은 사람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정호는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회장단 몇 사람이 이 방에 있었다.

회의는 무난했고, 말들은 예의 바르게 오갔다.

 

정호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몇 번쯤은 말끝이 목까지 올라왔으나 끝내 삼켰다.

이미 한두 번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회원들의 침묵도 신호라는 것,

소통의 길이 막히면 공동체는 먼저 숨이 막힌다는 것,

이미 만들어진 통로를 버리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을 

조용히 바깥으로 밀어낸다는 것.

 

그때마다 사람들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중한 표정은 때로 거절보다 더 분명했다.

마지막에 그가 한 말은 "수고 많으십니다"였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뒤,

빈 의자들만 탁자 둘레에 남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체온이 머물렀을 자리도 금세 식었다.

창밖으로 운동장이 보였다.

 

마른 잎 몇 장이 바람에 밀려 낮게 미끄러졌다.

한때 학생들로 가득하던 교정은 이제 소리의 자리를 비워둔 듯했다.

멀리서 차량 소리가 지나가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복도 끝에서 번지던 웃음 같은 것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은퇴한 뒤에도 그는 가끔 자신이 아직 이곳 어딘가에 남아 있다고 느꼈다.

학교를 떠났는데도 학교가 사람을 완전히 놓아주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다.

 

분필가루 냄새,

학기 초의 분주한 공기,

시험 기간 저녁의 적막.

그런 것들은 직함보다 오래 남았다.




명예교수회는 학교와 닮아 있으면서도 다른 곳이었다.

현역의 시간이 끝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

더 오를 계단도,

서둘러 증명할 이유도 없어 보였지만,

그곳에는 다른 종류의 결핍이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면서도 쉽게 묻지 못했고,

누가 아픈지,

누가 조용히 시간을 건너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행사는 있었으나 이어지지 않았고,

소식은 생겼으나 머물지 못했다.


정호는 그 풍경 앞에서 오래전 자신의 시간을 떠올렸다.


기러기아빠.


한때 그 이름은 우스꽝스럽고도 쓸쓸하게 들렸지만,

어느 순간 그의 생활 전체를 설명하는 말이 되어 있었다.

 

미국 텍사스에 가족이 있고,

한국의 저녁 식탁 앞에는 늘 혼자인 자신이 있었다.

그는 그 시간 속에서 멀리 있는 사람과 관계를 잃지 않는 법을 배웠다.

 

연락하지 않으면 마음은 빨리 마른다는 것,

보이지 않을수록 더 자주 묻고 더 세심하게 들어야 한다는 것,

외로움은 지나고 나면 기술이 되기도 한다는 것.


처음 텍사스에 갔을 때 그는 그곳의 겨울 냄새를 기억했다.

한국의 겨울처럼 차갑고 매운 공기가 아니라,

마른 흙과 오래 달린 트럭의 쇳내,

잔디와 먼지가 뒤섞인 냄새였다.

 

하늘은 지나치게 높고 빛은 사정없이 밝았으나 이상하게도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곳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었다.

머물다 돌아올 사람이었다.

문제는 돌아오고 난 뒤에 시작되었다.


가족은 텍사스에 남고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길지 않은 시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한두 해쯤,

조금 참고 견디면 지나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람은 견뎌야 하는 미래를 늘 실제보다 짧게 상상한다.

 

정호도 그랬다.

한국으로 돌아온 첫날 밤,

그는 비어 있는 집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전기밥솥에서 김이 올라왔고,

다시 데운 국 표면에는 엷은 막이 앉아 있었다.

식탁 맞은편 의자는 비어 있었다.

 

그 빈 의자는 너무 또렷해서,

차라리 누군가 앉아 있는 것보다 더 선명했다.

 

아이가 밥 먹다 흘린 자국도 없고,

아내가 반찬 그릇을 밀어두던 손도 없고,

수저가 부딪히는 작은 소리도 없었다.

 

그는 그 적막이 견디기 어려워 일부러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 속 사람들은 지나치게 활기차게 웃었고,

그 웃음은 집 안의 조용함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그날 밤 처음으로 그는 깨달았다.

가족이 멀리 있다는 것은 단지 거리가 멀다는 뜻이 아니었다.

시간의 결이 달라진다는 뜻이었다.


아이들이 아침을 맞을 때 그는 밤으로 들어갔고,

아내가 저녁 준비를 시작할 때 그는 이미 하루를 거의 다 써버린 뒤였다.

안부를 묻는 일조차 계산이 필요했다.

 

지금 전화하면 학교 갈 준비를 하겠지.

지금은 학원에 있겠지.

지금쯤이면 자고 있겠지.

 

시차는 단순한 시간 차이가 아니라 서로의 하루를 동시에 

만질 수 없게 만드는 얇고 단단한 막 같았다.

처음 몇 달은 전화가 오히려 더 잦았다.

서로가 서로를 견디지 못해 자주 확인했던 탓이었다.


"오늘은 뭐 했어?"

"학교는 어땠니?"

"밥은 먹었어?"

"여긴 날씨가 너무 건조해."


질문은 소박했고 대답은 짧았다.

그러나 정호는 그 짧은 대답 속에서 하루의 기운을 읽으려 애썼다.

 

아이의 "괜찮아"에 실린 숨소리,

아내의 "별일 없지"가 정말 별일 없다는 뜻인지 아닌지,

 

전화기 너머의 침묵 길이가 평소보다 조금 긴지 짧은지까지 귀 기울였다.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사랑은 감정보다 기술에 가까운 것이었다.

 

더 자주 묻는 일,

사소한 변화를 기억하는 일,

상대가 말하지 않은 것을 짐작해 보는 일.


어느 날은 초등학교에서 돌아온 막내가 전화기 너머로 울었다.

영어 시간에 발표를 했는데 아이들이 웃었다고 했다.

 

정호는 한참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괜찮아, 그런 건 다 지나간다"고 말하기엔 아이의 울음이 너무 가까웠고,

"아빠가 지금 가줄게"라고 말하기엔 태평양이 너무 멀었다.

 

그는 한동안 수화기만 꼭 쥔 채 아이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느리게 말했다.


"아빠도 네 나이 땐 그런 적 있었어.

창피한 건 오래 안 가. 내일은 또 다른 날이 와."


그 말이 아이를 얼마나 위로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전화를 끊고 난 뒤 한참 동안 수화기에 남아 있던 

자기 손의 열기만 또렷이 기억했다.


멀리 있는 가족에게는 당장 해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무력감은 가난과 비슷했다.

마음은 넘치는데 건너갈 수단이 부족한 상태.

 

그래서 그는 다른 방식들을 배워야 했다.

메일을 쓰고, 사진을 보내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은 물건을 골라 택배 상자를 부쳤다.

아내가 힘들어 보이는 날이면 긴 설명 대신

 

"오늘 목소리가 많이 지쳤더라"는 한 줄을 먼저 남겼다.

 

아이의 시험 날짜를 수첩에 적어두고 그날 밤엔 꼭 먼저 전화를 걸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들이었지만,

그런 사소함이 관계를 붙들고 있었다.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큰 사랑보다 작은 반복으로 버틴다.

 

방학이면 그는 텍사스로 갔다.

공항에 내리면 아이들은 전보다 조금씩 더 커져 있었다.

 

처음엔 달려와 안기던 아이가 어느 해부터는 멋쩍은 듯 웃으며

캐리어를 대신 들어주었다.

키는 자라고 목소리는 변하고 농담의 결도 달라졌다.

그는 그 변화를 반가워하면서도 어쩐지 서운했다.

 

함께 살았다면 날마다 조금씩 보았을 변화들을,

그는 방학마다 건너뛰듯 만나고 있었다.


텍사스의 집은 늘 넓어 보였다.

천장이 높고 창이 컸다.

 


해 질 무렵이면 거실 바닥 위로 기다란 빛이 누웠다.

냉장고 문엔 아이들이 학교에서 그려온 그림과 공지문이 자석으로 붙어 있었고,

부엌 선반 위에는 아내가 자주 쓰는 머그잔이 놓여 있었다.

 

그는 그 집에 들어설 때마다 자신이 가족의 중심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가족이 이미 굴러가고 있는 시간 속으로 잠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가족은 여전히 가족인데,

일상은 이미 자기 없이도 완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

 

아내는 아이들의 학교 일정과 동네 소식을 혼자서도 훤히 꿰고 있었고,

아이들은 아빠가 모르는 친구 이름을 자연스럽게 입에 올렸다.

 

그는 저녁 식탁에서 웃으며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끔 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하루는 설거지를 돕고 있는데 아내가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당신 없을 때는 다 이렇게 흘러가."


그 말엔 원망도 자랑도 없었다.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오래 남았다.

그는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만 바라보았다.

 

접시 위에 남은 거품이 천천히 꺼지고 있었다.

당신 없을 때는 다 이렇게 흘러가.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라고 병원도 가고 장도 보고 숙제도 하고 주말엔 교회도 가고 

감기에도 걸렸다가 나을 것이다.

세상은 늘 누군가 없이도 흘러갔다.


그런데 그 사실을 가족의 입으로 듣는 순간,

그는 자신이 집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믿어온 시간의 일부가 

아주 가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희생이라는 말은 때로 자신을 위로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속이기도 했다.

 

나는 가족을 위해 떨어져 있다.

그 말은 사실이면서도,

또 사실만은 아니었다.

 

가족은 그의 부재를 견디며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었고,

정호 또한 한국에서 자신의 역할을 지키며 또 다른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는 사랑도 있었지만,

각자의 생을 지키기 위한 체념과 적응도 있었다.


밤이 깊으면 그는 텍사스 집 뒷마당에 잠깐 나가 서 있곤 했다.

하늘은 유난히 넓었고 별은 가까웠다.

 

어디선가 스프링클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마른 풀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그 넓은 하늘 아래 서 있으면 오히려 더 또렷하게 고독해질 때가 있었다.

 

두 개의 집이 동시에 자기 삶이었고,

동시에 어느 쪽도 완전히 자기 것이 아닌 듯한 기분.

어쩌면 그는 오랫동안 경계 위에서 살았는지도 몰랐다.

 


명예교수회에 와서 그가 본능처럼 움직인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로를 궁금해하면서도 쉽게 닿지 못하는 사람들,

소식이 끊기면 관계도 흐려지는 구조,

묻지 않으면 아무 일 없는 줄 알게 되는 자리.

 

그는 그 풍경 앞에서 즉시 알아보았다.

왜냐하면 그런 끊어짐이 사람을 얼마나 빨리 고립시키는지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소식을 모아야 했고,

누군가는 기록을 남겨야 했다.

 

행사가 끝난 뒤 사진 몇 장과 짧은 문장이 없으면 

그날의 공기는 너무 쉽게 흩어졌다.

참석하지 못한 사람은 공동체의 바깥으로 밀려나기 쉬웠다.

 

그는 카페를 만들고,

소식을 올리고,

사진을 정리했다.

처음에는 적막했다.

 

공지 하나를 올려도 들여다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부고와 병문안을 챙기고,

회원들의 책 소식을 나누고,

소식이 없는 날에는 계절 안부라도 남겼다.


교수님, 반갑습니다.

다음 모임에 나가겠습니다.

오랜만에 소식 듣습니다.

짧은 문장들이었다.

 

그러나 공동체를 움직이는 것은 대개 그런 짧은 문장들이었다.

사람은 거창한 뜻보다 자신의 이름이 다시 불리는 순간에 먼저 마음을 연다.


실제로도 그랬다.

전에는 늘 비슷한 얼굴만 보이던 자리에 다른 이들이 섞이기 시작했다.

 

한 번도 글을 남기지 않던 이가 서툰 손으로 댓글을 달았고,

오래 나오지 않던 사람이 행사 사진을 보고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정호는 그 장면들을 보며 마른 화분에 물을 주고 돌아섰다가 

며칠 뒤 흙냄새가 다시 올라오는 것을 맡는 기분을 느꼈다.

공동체는 돈보다 먼저 소통으로 숨을 쉰다.

그 말이 그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다.


그러나 시간은 한 사람의 방식만을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회장단이 바뀌었다.

새로 맡은 이들은 성실했고 저마다 책임감도 있어 보였다.

 

다만 그들이 조직을 보는 결이 달랐다.

관계의 온도보다 일정과 절차를 더 신뢰하는 눈빛.

 

정호는 몇 번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회원들의 침묵이 무관심만은 아닐 수 있다고,

이미 열어놓은 길을 버리기보다 살려 쓰는 편이 낫다고.


대답은 늘 비슷했다.


"좋은 말씀입니다. 참고하겠습니다."


카페의 공지는 뜸해졌고,

행사 기록도 예전 같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한 번 끊어진 소식은 생각보다 빨리 발길을 멀어지게 했다.

정호는 마치 힘들여 열어둔 창문이 누군가의 무심한 손에 의해 

천천히 닫히는 것을 보는 듯했다.


왜 사람의 마음을 먼저 읽지 않을까.

왜 침묵을 아무 말 없음으로만 받아들일까.

 

그 질문들은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의 안에서 오래 맴돌았다.

저녁 식탁 앞에서도,

잠들기 전 천장을 바라볼 때도 그랬다.

 

답답함은 서운함이 되었고,

서운함은 조금씩 억울함을 닮아갔다.

 

그는 그런 자기 마음이 낯설지 않았다.

젊은 날에도 그는 자주 이런 식으로 상처받았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왜.

그 물음은 소리 없이 오래갔다.


어느 토요일 오후,

그는 교회에 들렀다.

본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십자가 아래로 엷은 햇빛이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고,

색유리창을 통과한 빛이 바닥에 희미한 얼룩을 드리우고 있었다.

 

정호는 맨 뒤 의자에 앉았다.

특별히 기도할 제목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마음이 자꾸 한곳에서 걸려 넘어질 때,

그는 가끔 그렇게 적막 속에 앉아 있곤 했다.


처음에는 회장단에 대한 서운함이 떠올랐다.

이어서 자신이 해온 일들이 지나갔다.

 

공지문을 다듬던 밤,

사진을 정리하던 시간,

누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몇 번씩 전화를 돌리던 일.


나는 분명 최선을 다했다.

그 생각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실을 붙들수록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최선을 다했다는 기억이 자신을 묶는 끈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왜 알아주지 않을까.

왜 지키지 않을까.


그때 그는 자기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던 얼굴 하나를 보았다.

놓기 싫어하는 마음.


그것은 책임감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결이 달랐다.

 

책임감은 맡은 일을 다하면 손을 놓을 줄 안다.

그러나 집착은 일이 끝난 뒤에도 손의 모양을 바꾸지 못한다.

 

선의 역시 오래 쥐고 있으면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는 것을 

그는 처음으로 또렷하게 느꼈다.

 







색유리 빛이 천천히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의자 다리에 걸려 있던 붉은 빛이 어느새 발치로 내려와 있었다.


이제는 놓아도 된다.

누군가 말한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햇빛은 아무 소리 없이 물러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 문득 석양이 떠올랐다.


석양은 제 수고를 설명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세상을 비추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확인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제게 허락된 시간을 다 쓰고 나면 조용히 빛을 거두고 

하늘의 색 하나를 바꾸어 놓는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정호는 오래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대신 거실 창가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보았다.

 

맞은편 아파트 벽이 서서히 붉어졌다가 어두워졌고,

베란다 화분의 잎맥이 잠시 선명해졌다가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았다.


기억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 문장은 처음엔 자신을 달래는 말처럼 들렸지만,

오래 되뇌자 조금씩 자기 마음의 온도와 닮아갔다.

 

그는 자신이 받아야 할 것이 이미 다른 모양으로 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시간,

공동체가 무엇으로 살아나는지를 배운 시간,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자기 안의 애씀과 허기까지 함께 보게 된 시간.

 







아내와 다시 함께 살게 된 뒤에도 한동안 식탁은 낯설었다.

기다려왔던 시간이 끝났으니 모든 것이 곧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지만,

막상 한집에 살게 되고 보니 기쁨과 안도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묘한 어긋남이 남아 있었다.

 

아내는 부엌에서 여전히 익숙한 손놀림으로 움직였으나,

냉장고 어느 칸에 김치가 있는지,

세탁기 코스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근처 병원 예약을 어느 앱으로 해야 하는지,

그런 사소한 질서들이 이미 아내의 손안에 정리되어 있었다.

 

정호는 그 질서 안에 뒤늦게 들어온 사람 같았다.

하루는 설거지를 도우려고 싱크대 앞으로 갔을 때 

아내가 고무장갑을 낀 채 말했다.


"그냥 둬요. 내가 하면 빨라."


말투는 평범했다.

오랜 습관에서 나온 말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한마디 앞에서 이상하게 손이 멈췄다.

그 말 속에는 원망도 무시도 없었지만 이미 오래 혼자 해온 

사람의 리듬이 들어 있었다.

 

한때는 서로 너무 멀리 있어서 말 한마디가 아쉬웠는데,

이제는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오히려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있었다.


늙은 부부의 사랑은 때로 다시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 

다시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몰랐다.


며칠 뒤 두 사람은 근처 시장에 함께 갔다.

장바구니를 들고 걷던 길에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가끔 아직도 멀리 있는 사람 같아."


정호는 그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같이 있어도, 생각은 어디 다른 데 가 있는 사람 같을 때가 있어."


그는 문득 자신이 얼마나 오래 '멀리 있는 자세'로 살아왔는지 떠올렸다.

전화를 걸기 전에 시간을 계산하고,

마음을 바로 말하지 못한 채 먼저 상대의 기분을 짐작하고,

돌아갈 날을 늘 염두에 두던 습관.

 

그런 것들이 이제는 몸에 밴 자세가 되어 가까이에 있는 

사람 앞에서도 마음을 다 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인지 몰랐다.


"같이 있게 되면 금방 예전처럼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봐."


아내는 쓸쓸한 웃음도 밝은 웃음도 아닌,

살아오며 여러 번 비슷한 마음을 지나온 사람의 웃음을 지었다.


"예전처럼 안 되는 게 당연하지.

우린 그 사이에 너무 많은 시간을 따로 살았잖아."


그 말은 이상하게도 정호를 안심시켰다.

예전처럼 안 되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뜻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조금씩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주일이면 정호가 현관 앞에서 아내의 신발 방향을 돌려놓았고,

아내는 그런 일을 두고

"별거 아닌데, 그런 거"라고 말했다.

 







병원 정기검진 날엔 함께 갔고,

병원 앞 국수집에서 창가에 마주 앉아 국물을 떠먹었다.

 

저녁이면 함께 단지 안을 걸었고,

걸을 때 사람은 이상하게 조금 더 솔직해졌다.

 

집 안에서는 하지 않던 말들을 나란히 같은 방향을 보며 

걸을 때엔 조금씩 꺼낼 수 있었다.


"당신은 요즘 예전보다 말을 조금 더 하는 것 같아."


"멀리 살 때 버릇이 된 것 같아.

괜히 말하면 더 복잡해질까 봐…

먼저 참는 게 익숙해졌지."


"나도 그랬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많아지거든."


함께 산다는 것은 한집에 머무는 일인 동시에 

서로 다른 침묵을 천천히 번역해 가는 일이었다.

 

봄이 깊어갈 무렵 손주들의 목소리는 

전화기 스피커 너머로 집의 공기를 바꾸어 놓곤 했다.

"할아버지, 나 오늘 학교에서 상 받았어."

"할머니, 나 이만큼 컸어."

"다음에 오면 같이 공원 갈 거지?"


그 말들은 너무 가벼워서 오히려 오래 남았다.

통화를 마친 뒤에도 정호는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못했다.

 







검은 화면 위로 아주 잠깐 어린 시절의 자녀들 목소리가 겹쳐지는 것 같았다.

한때는 자기 아이들이 저런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늘 바쁘거나 멀리 있거나 혹은 마음속으로 

다른 걱정을 하느라 그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못했는지도 몰랐다.

 

언제부턴가 자녀들은 안부를 묻는 쪽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 요즘 혈압은 괜찮으세요?"

"약은 잘 챙겨 드세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예전에는 자신이 묻던 질문들이 이제는 자녀들의 입에서 나왔다.

부모 역할이 끝난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문이 닫히는 일이 아니었다.

 

조금씩 자리를 바꾸는 일이었다.

늘 앞에서 길을 보아주던 사람이 어느 순간 뒤에 서서 

걸음을 지켜보게 되는 일.


밤이면 정호와 아내는 거실에 나란히 앉아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난 가끔 미안해."


"뭐가?"

"애들한테.

같이 있으면서도 늘 급했고,

멀리 있으면서는 또 늘 미안했고."


정호는 그 말을 듣고 오래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사랑했다.

 

그런데 사랑한다고 해서 늘 잘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 행사에 빠졌던 날,

아픈 아이 곁에 끝까지 있지 못했던 날,

 

텍사스 공항에서 돌아서던 날,

전화기 너머의 울음을 충분히 안아주지 못했던 밤들.

 

부모의 후회는 대개 하지 않은 사랑보다 다 하지 못한 

사랑에서 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도 그래."


그 한마디에 아내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녀가 바란 것은 긴 변명이 아니라 같은 마음에 대한 확인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점점 자신의 노년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작은 약통 안에 가지런히 늘어선 알약들,

아침에 한 번 더 짚고 몸을 세워야 하는 허리,

전보다 길어진 피로.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일도 잦아졌다.

 

어느 날 명예교수회 선배 한 사람의 부고를 받고 조용한 빈소에 앉아 있던

그는 문득 생각했다.

저 자리에 언젠가 내 사진도 놓이겠지.


예전 같으면 얼른 떨쳐냈을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죽음은 더 이상 너무 먼 데 있는 추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바로 코앞의 공포도 아니었다.

 

다만 분명히 자기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늦추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맞이할지는 조금 생각해볼 수 있는 손님 같았다.


그날 밤 그는 책상 서랍에서 누렇게 바랜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젊은 날에는 이 구절이 영웅적인 문장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에게는 '마치고'라는 말이 먼저 마음에 들어왔다.

 

맡은 길을 다 가고 난 뒤 조용히 끝낼 줄 아는 태도.

어쩌면 신앙의 마지막 모습은 뜨거운 결의보다 

그런 마침에 가까운 것인지도 몰랐다.


기도는 짧아졌고 대신 더 자주 하게 되었다.

교회를 위해 거창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줄었고,

대신 아픈 사람의 이름을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를 

말하기보다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더 쉽게 인정하게 되었다.

신앙은 점점 결심이 아니라 의탁에 가까워졌다.

 

그는 노년의 품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생각하는 마지막 품위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병이 들어도 사람들에게 함부로 분노를 쏟지 않는 일,

점점 약해지는 몸을 인정하되 스스로를 지나치게 비참하게 여기지 않는 일,

 

도움을 받게 될 때 감사와 미안함을 함께 말할 줄 아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자기 몫의 빛을 다 쥔 채 놓지 않으려 하지 않는 일.








그 생각은 다시 기록으로 이어졌다.

초여름 어느 날, 정호는 서재 창문을 열어두고 오래된 

외장하드 몇 개를 꺼내 놓았다.

컴퓨터 화면에 오래된 폴더들이 떠올랐다.


텍사스 가족,

명예교수회 행사사진,

퇴임식 영상,

수필 초고,

미정리.


그는 텍사스 가족 사진들을 먼저 열었다.

집 앞 잔디밭, 바비큐 그릴,

아이들이 풍선을 들고 서 있는 모습,

아내가 종이컵에 음료를 따르는 옆모습.

 

사진 속의 자신은 지금보다 젊었지만 어딘가 늘 약간 긴장한 표정이었다.

잠시 머물러 있다가 다시 떠날 사람의 웃음.


정호는 문득 깨달았다.

사진에는 찍힌 사람만 남는 것이 아니라 찍은 사람의 시선도 함께 남는다고.

 

무엇을 예쁘다고 여겼는지,

무엇을 놓치고 싶지 않았는지,

어떤 순간 앞에서 손이 급히 카메라를 들었는지가 사진 구석마다 배어 있었다.

 

저녁 무렵 그는 명예교수회 행사 사진들을 열었다.

벚꽃 아래 서 있는 노교수들,

식당 원탁에 둘러앉아 잔을 든 얼굴들,

 

강연 뒤 기념촬영,

병문안 뒤 병원 로비에서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인 사진들.

확대 버튼을 눌러 얼굴을 더 가까이 보았다.

 

나이 든 얼굴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애틋했다.

 

젊은 얼굴은 앞날을 품고 있지만,

늙은 얼굴은 살아낸 시간을 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열심히 사진을 남긴 이유가 

단지 기록을 위해서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이 사람들이 사라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진을 찍고 소식을 기록하고 글을 남겼다.

 

잊히지 않게 하려고. 적어도 완전히는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그러나 그 마음의 바닥에는 자기 자신도 잊히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섞여 있었는지도 몰랐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지나온 시간이 완전히 지워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누군가 한 번쯤은 기억해주기를,

어떤 장면 속에서는 자기 마음의 결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문제는 무엇을 남기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남기려 하느냐일 것이다.

그는 인쇄해둔 원고 뭉치를 정리하다가 아내에게 물었다.


"뭘 버리고, 뭘 남길까."


아내는 되물었다.


"당신은?"


정호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잘 쓴 글보다… 내가 왜 썼는지가 남는 글을 두려고."


그 뒤로 그는 기록을 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전에는 중요한 행사,

잘 나온 사진,

완성도 높은 글을 골라 남기려 했다면 이제는 

그 기록 안에 자기 마음의 진실이 있는지를 먼저 보게 되었다.

 

글이 조금 서툴러도 진심이 또렷한 것은 남겨두고 싶었다.

사진이 흔들렸어도 그날의 공기가 살아 있는 것은 버릴 수 없었다.

 

영상이 짧아도 사랑의 방향이 보이는 것은 지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점점 알 것 같았다.

 

사람이 끝내 남기고 싶은 것은 결과보다 태도인지도 모른다고.

무엇을 성취했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흔적들.


여름이 깊어지고 다시 가을이 가까워오면서 그는 삶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학교의 시간은 학교의 시간,

가족의 시간은 가족의 시간,

신앙의 시간은 신앙의 시간대로 따로 존재한다고 여겼던 지난날과 달리,

 

이제는 그것들이 하나의 문장처럼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마치 오랫동안 여러 장에 나뉘어 적혀 있던 원고를 한데 모아 읽었더니,

뜻밖에 하나의 문장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덜 정리된 채 흘러갔고,

그래서 더 한 문장에 가까웠는지도 몰랐다.


잘 쓴 부분도 있고,

지나치게 길어진 부분도 있고,

괄호처럼 끼어든 시간도 있고,

차마 다 지우지 못한 문장도 있었다.

 

어떤 대목은 너무 힘을 주어 썼고,

어떤 대목은 더 써야 하는데 멈추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문장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삶은 원래 매끈한 문장이 아니라 고쳐 쓴 흔적과 여백까지 포함해 

겨우 하나가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느 날 그는 교회 본당 맨 뒤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채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기도라고 해도 특별한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감사와 후회, 두려움과 평안이 한데 섞여 있어 어느 하나만 따로 꺼내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으로 아주 짧게 중얼거렸다.


이만하면 제 삶도 하나의 문장이 된 것 같습니다.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눈물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오래 걸어온 사람이 마침내 어깨에서 작은 짐 하나를 내려놓는 듯한 

가벼움을 주었다.

 

잘 썼는지 못 썼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문장이 끝내 끝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

중간에 너무 많이 흔들렸어도 결국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저녁이 오면 그는 아내와 함께 창가에 섰다.

된장국이 조금 짜다는 말, 오늘 바람이 차다는 말,

주말엔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같은 것들이 오갔다.

 

젊은 날 같으면 너무 시시해서 대화라고도 여기지 않았을 말들이었지만,

이제 와 보니 삶을 지탱하는 것은 대개 그런 사소함들이었다.

 

큰 사건도, 큰 성취도,

큰 슬픔도 없이 지나가는 하루.

 

함께 저녁을 먹고,

같이 하늘을 보고,

무릎 통증을 한두 마디 나누고,

내일 장 볼 생각을 하는 날.


어느 가을 저녁,

두 사람은 베란다 창가에 나란히 섰다.

 

해는 이미 많이 기울어 있었고,

맞은편 동 벽면에 번지던 빛이 천천히 누그러지고 있었다.

 

하늘은 옅은 금빛에서 엷은 분홍으로,

다시 흐린 푸른색으로 옮아갔다.

 

멀리서 아이들 부르는 소리가 잠깐 들렸다가 사라졌다.

자동차 시동이 켜지는 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한 번 쓸고 지나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정호는 문득 아무 말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는,

너무 많은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

 

가족에게도,

공동체에게도,

자신에게도.

 

그러나 어쩌면 삶은 원래 다 말하지 못한 채로 흘러가는 쪽인지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다 설명했느냐가 아니라 끝내 어떤 마음으로 

서 있게 되었느냐일 것이다.


아내가 먼저 말했다.


"오늘 하늘 좋네."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한참 뒤 그가 덧붙였다.

 

"이런 저녁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아."


"별일 없는 날이?"


"응. 별일 없는 날."


그 말은 두 사람 사이에서 오래 머물렀다.


정호는 오래전 명예교수회 사무실의 서쪽 창을 떠올렸다.

그리고 텍사스의 마른 저녁과,

교회 본당의 색유리빛과,

 

손주를 안고 있던 아침 햇살과,

병원 복도의 희미한 형광등과,

아버지 병실 창가의 흐린 빛까지 함께 떠올랐다.

 

한 생을 이루는 빛들은 모두 달랐지만,

이상하게도 이제는 한 방향에서 온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살아온 시간은 결국 빛이 머물렀다 떠난 자리들을 

기억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빛은 사람의 얼굴 위에 머물렀고,

어떤 빛은 식탁 위 반찬 그릇에 걸렸고,

어떤 빛은 사진 속 한순간을 남겼고,

어떤 빛은 마음속 깨달음이 되어 늦게 도착했다.

 

그리고 지금 이 빛은 물러나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방식으로 

하루의 끝을 닫고 있었다.


정호는 창틀 위에 올려둔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더는 붙들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았다.

 

붙들 수 없어서가 아니라 지나간 것들은 지나간 대로 

자기 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도, 시간도,

사랑도, 역할도.

너무 오래 쥐고 있으면 모양이 상하고,

적당한 때 놓아주면 오히려 마음속에서 더 또렷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춥다. 들어가자."


아내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창문을 닫고 거실로 들어왔다.

유리문이 닫히자 바깥의 바람 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거실 등은 환했고,

소파 위에는 낮에 접어둔 담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주 평범한 저녁의 풍경이었다.


정호는 그 평범함 앞에서 문득 고마움을 느꼈다.

삶이 거대한 깨달음으로만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런 저녁을 끝까지 잃지 않고 건너온 사람만이 

마지막에 조용해질 수 있는지도 몰랐다.


잠들기 전 그는 서재에 잠깐 들렀다.

책상 위에는 정리해둔 사진 상자와 메모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펼쳐보지 않았다.

이제는 무엇을 남길지에 대한 생각도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남겨질 것이 남겨질 것이고,

사라질 것은 사라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다 가지런히 매듭짓는 일이 아니라 

남은 오늘을 너무 허투루 보내지 않는 일일지도 몰랐다.


그는 스탠드 불을 끄고 침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먼저 누워 있었다.

정호는 조용히 자리에 누웠다.

방 안은 어두웠고, 창밖에서는 바람이 다시 한 번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삶은 결국 무언가를 완벽히 이루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물어가는 동안에도 

곁에 남은 빛을 알아보는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빛을 다 알아본 사람은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자기 삶을 너무 아깝게 여기지도,

너무 억울해하지도 않게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정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숨소리는 낮고 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는 더는 무엇을 덧붙이지 않았다.

한 문장은 이미 충분히 길었고, 마침표는 서두르지 않아도 제때 올 것이다.


창밖 어딘가에 남은 저녁빛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 번 하늘을 바꾸어 놓고 간 빛은 완전히 사라지는 법이 없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 밤은 고요했고,

그 고요 속에는 오래 살아낸 사람만이 겨우 닿을 수 있는 

작고 따뜻한 평안이 가만히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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