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과 구원 사이에서

 


판단과 구원 사이에서

 


제1장 — 판사의 눈


봄이 청송 땅에 내려앉는 방식은 조용하고 느렸다.
산벚꽃은 한꺼번에 피지 않았다. 

능선 아래쪽부터 한 그루씩, 

마치 차례를 기다리듯 피어올랐다. 

 

강의원은 마루에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손에는 식어가는 보리차 한 잔이 들려 있었고, 

눈빛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라 습관에 가까웠다.


그는 서른두 해 동안 판사였다.
판사의 직업은 보는 것이다. 

정확하게, 빠짐없이, 감정을 제거하고. 강의원은 그 일을 잘했다. 

아니, 탁월했다. 

그의 판결문은 간결했고 논리는 빈틈이 없었다. 

 

동료들은 그를 '철판(鐵判)'이라 불렀다. 

쇠처럼 단단한 판단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그 별명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오랫동안.


은퇴 후 그는 대구 아파트를 떠나 청송으로 내려왔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지 삼 년째였고, 

자식들은 서울과 부산에 흩어져 있었다. 

 

산이 좋아서 온 것이 아니었다. 

도시가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법원에서는 매일 누군가 그를 필요로 했다. 

누군가의 죄를 가리고, 

진실을 판별하고, 

옳고 그름의 경계를 그었다. 

 

그런데 은퇴한 날부터, 

세상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마을은 작았다. 스무 가구 남짓, 

대부분 칠십을 넘긴 노인들이었다. 

 

강의원은 처음 석 달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건네는 인사에 고개를 끄덕였고, 

가끔 마을 어귀 슈퍼마켓에서 장을 볼 때 짧게 답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쉬지 않았다.
이순례는 골목 건너 집에 살았다. 

예순여덟 살, 남편을 일찍 여읜 과부였다. 

 

그녀는 목소리가 컸다. 웃음도 컸다. 

마을 경로당에서 화투를 치다가 이기면 손뼉을 쳤고, 

지면 탁자를 손바닥으로 한 번 내리쳤다. 

 

강의원은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속으로 판결을 내렸다. 

경망스럽다. 단어 하나면 충분했다. 

판사는 늘 단어 하나로 사람을 정리했다.


김노인은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일흔여덟, 허리가 굽고 왼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는 매일 오전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을 때는 혼자 중얼거렸다. 

 

강의원의 판결: 노망기가 있다. 

역시 단어 하나.


봄이 깊어지는 사월의 어느 오후, 

강의원은 마루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문득 자신의 습관을 알아챘다. 

 

그는 사람을 보면 언제나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빈틈을, 결함을, 판단의 근거를. 

그것은 직업적 훈련이었지만, 

직업이 끝난 뒤에도 그 눈은 꺼지지 않았다. 

 

법정이 사라진 뒤에도 판사는 여전히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다만 이제는 판결문을 쓰지 않을 뿐이었다.


그는 책을 덮었다.
창 너머로 산벚꽃 한 가지가 바람에 흔들렸다.

 

 꽃잎 몇 장이 떨어졌다.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보면서도 그는 이상하게 허전했다. 

 

꽃은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피고 진다. 

 

강의원은 그 단순함 앞에서 자신이 몹시 낡은 기계처럼 느껴졌다.
저녁 무렵, 이순례가 된장찌개 한 냄비를 들고 대문 앞에 섰다.


"혼자 사시는 것 같아서요. 

많이 끓였어요."


강의원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받았다. 

 

그녀가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며, 

그는 오늘 처음으로 그녀에 대한 단어를 바꾸지 못했다. 

 

새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경망스럽다는 판결이 흔들렸다. 

 

아직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날 밤 그는 오래 잠들지 못했다.



제2장 — 대구로 가는 길


사흘 뒤, 강의원은 버스를 타고 대구로 나갔다.
제자 박재문이 연락해왔기 때문이었다. 

박재문은 그가 법학대학원에서 마지막으로 가르친 학생이었다. 

 

지금은 변호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용건은 간단했다. 

오랜만에 뵙고 싶다,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다. 

 

강의원은 처음에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청송의 봄이 갑자기 너무 고요하게 느껴졌다.


버스는 안동을 거쳐 대구로 들어섰다. 

창밖으로 도시가 펼쳐졌다. 

신호등, 횡단보도, 빌딩 유리에 반사되는 햇빛. 

 

강의원은 그 풍경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낯설지는 않았다. 

다만 먼 나라처럼 느껴졌다.


박재문은 중구의 작은 한정식집을 예약해두었다. 

법원 인근, 강의원이 삼십 년 넘게 오가던 골목이었다. 

 

둘은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박재문은 여전히 반듯했다. 

말은 정확했고 태도는 공손했다. 

 

강의원은 그것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가르친 사람이다. 

그것이 그의 판결이었다.


그러나 식사가 절반쯤 지났을 때, 

박재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교수님,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강의원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표정이 판사의 그것으로 돌아갔다.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교수님께 배우는 동안, 

저는 늘 긴장했습니다. 

 

교수님은 학생의 논리가 흔들리면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하셨죠. 

정확했습니다. 

그런데 그 정확함이 때로는 사람을 작아지게 했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강의원은 반박하려 했다. 

논리는 이미 머릿속에 정렬되어 있었다. 

 

엄격함은 교육이다. 

법의 세계에서 감정적 관용은 독이다. 

 

나는 학생들을 강하게 만들려 했다. 

그러나 그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 

그는 박재문의 눈을 보았다.


그 눈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조심스러운 걱정이 있었다. 

 

스승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마침내 꺼내는 사람의 눈이었다.


강의원은 입을 다물었다.


"화가 나셨습니까?" 박재문이 물었다.


"…아니다." 강의원은 천천히 답했다.

 "듣고 있다."


박재문은 말을 이었다. 

강의원의 판결 방식이 제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회자되었는지. 

그의 명쾌함을 존경하면서도, 

그 명쾌함 앞에서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으로 느꼈다는 것. 

 

강의원은 들었다. 

중간에 끊지 않았다. 

그것이 그에게는 작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식사가 끝났다. 

골목으로 나서자 사월의 오후 햇볕이 길게 누워 있었다. 

강의원은 인근 법원 건물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박재문은 옆에서 말없이 걸었다.


법원 정문 앞에서 강의원은 멈추었다.


삼십 년. 그는 이 문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늘 앞서 걸었고, 

늘 판단했고, 

늘 확신했다. 

 

그런데 오늘, 제자의 말 한마디가 그 확신의 어딘가에 작은 구멍을 냈다. 

바람이 들어오는 구멍.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그냥 바람.


"재문아."


"예, 교수님."


"그동안 힘들었겠구나."


박재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제3장 — 정자나무 아래서


청송으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강의원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잠이 얕았다. 

박재문의 말이 밤새 조각조각 떠올랐다. 

 

그것을 분석하려 했지만, 

판사의 뇌는 이번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논리로 정리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대문을 나섰다. 

목적지 없이 걸었다. 

발이 자연스럽게 마을 입구 쪽으로 향했다. 

 

정자나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 

예상대로 김노인이 앉아 있었다.


강의원은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김노인이 먼저 손을 들었다.


"강 선생, 이리 오소."


강의원은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망설인 뒤, 

천천히 정자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나무 그늘이 서늘했다. 

김노인 옆 나무 등걸에 앉았다.


"잠을 못 잔 얼굴이네."


강의원은 대꾸하지 않았다. 

김노인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젊었을 때는 사람 보는 눈이 나쁘지 않았어. 

이 사람은 이렇다, 

저 사람은 저렇다. 

딱딱 보였거든."


강의원은 귀를 기울였다.
"근데 나이 먹으면서 알았어. 

내가 본 게 그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을 봤던 거야."


짧은 침묵.


"판사 하셨다지요?"
강의원은 놀랐다. 

이순례가 말했을 것이었다.


"예."


"판사는 보는 게 일이잖아요. 

근데 판사도 사람이라, 

자기 눈의 한계가 있을 거 아니요."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강의원은 그 말을 바로 받아치지 않았다.

 

 판사였다면 즉각 반론을 구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판사가 아니었다. 

그냥 잠 못 이룬 일흔두 살 노인이었다.


"맞습니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김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먼 산을 바라보았다. 

두 노인은 한참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바람이 정자나무 잎을 흔들었다. 

잎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강의원은 김노인을 바라보았다. 

노망기가 있다고 판결했던 사람. 

그런데 지금 그의 말은 노망이 아니었다. 

 

단순했지만 정확했다. 

아니, 단순했기 때문에 정확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단순한 진실을 복잡한 논리로 덮어왔는지 생각했다.
"여기 매일 앉아 계십니까?" 강의원이 물었다.


"매일이지요. 

지나가는 사람 보는 게 낙이야. 

다들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나 싶어서."


"외롭지 않으십니까."


김노인이 처음으로 강의원을 바라보았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 뜻밖의 미소가 번졌다.


"외롭지. 

근데 외로운 것도 살아있다는 증거 아니겠소."


강의원은 그 말을 삼켰다. 

오래오래.



제4장 — 요한복음 3장 17절


그날 저녁, 강의원은 서재 구석에서 오래된 성경을 꺼냈다.
아내가 쓰던 것이었다. 

표지가 낡았고, 

페이지 여기저기에 아내의 필체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는 이 성경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펼치지도 않았다. 

열면 아내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정확히는 그 목소리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는 요한복음을 찾았다. 

3장. 손가락이 17절에 멈추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아내의 밑줄이 그 구절 아래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여백에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보, 당신도 이 눈으로 사람을 보면 좋겠어요.

 

강의원은 멈추었다.
언제 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게 쓴 말임은 분명했다. 

 

아내는 살아생전 그의 판단하는 눈에 대해 몇 번 조심스럽게 말했었다. 

그는 그때마다 농담처럼 넘겼다. 

 

나는 판사야. 이게 직업이야. 

아내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경 여백에 남겨두었다.


강의원은 성경을 덮지 않았다. 

그대로 탁자 위에 펼쳐두고 의자에 깊이 앉았다.


하나님은 왜 심판하러 오지 않으셨는가.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신다. 

인간의 결함도, 거짓도, 추악함도.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심판 대신 구원을 선택하셨다. 

강의원은 법학자로서 그 논리가 이해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잘못이 있으면 판결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법이다. 

그런데 신은 법보다 다른 무언가를 선택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오늘 밤 그는 조금 알 것 같았다.


판단은 거리를 만든다. 

판결은 선을 긋는다. 

그 선 안에 옳음이 있고 선 밖에 그름이 있다. 

 

판사는 그 선을 긋는 사람이다. 

그런데 구원은 선을 지우는 행위다. 

경계를 허물고 가까이 오는 것. 

결함을 알면서도 손을 내미는 것.


강의원은 생각했다. 

이순례의 된장찌개. 

김노인의 단순한 말. 

박재문의 조심스러운 고백.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자신은 그것들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판결을 멈추지 않았다. 

 

경망스럽다. 

노망기가 있다. 

내가 가르친 사람이다.


그는 그 판결들이 부끄러워졌다.
처음으로, 

진심으로.


창밖은 어두웠다. 청송의 밤은 도시와 달랐다. 

별이 많았고 소리가 없었다. 

 

강의원은 그 어둠 속에 오래 앉아 있었다. 

판결 대신 다른 무언가를 연습하듯. 

아직 이름을 모르는 무언가를.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그는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오기 전, 

 

그는 아내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늦었지만, 배우고 있어요.

 


제5장 — 장점을 말하는 연습


다음 날 아침, 

강의원은 이순례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마당에서 고추장을 항아리에 담고 있었다. 

강의원을 보자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일어났다.


"아이고, 웬일이세요?"


"된장찌개 잘 먹었습니다." 강의원이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그때 제대로 못 했습니다."


이순례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크게. 손뼉까지는 치지 않았지만, 

온 얼굴로 웃었다.


"에이, 괜찮아요. 드셨으면 됐지요."


"아닙니다." 강의원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맛있었습니다. 정말로."


이순례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그 눈에 뭔가 다른 것이 스쳐 지나갔다. 

당혹감인지, 

감동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녀가 낮게 말했다.


강의원은 그날 처음으로 이순례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목소리가 크고 웃음이 큰 사람. 

그런데 그것은 경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음의 표현이었다. 

혼자 사는 여자가, 

마을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우지 않기 위해 소리 내어 웃는 것. 

 

그것이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강의원은 그제서야 보았다.


"이 마을에서 순례 씨가 없으면 많이 쓸쓸하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이순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항아리를 바라보았다. 

어깨가 한 번 미세하게 움직였다.


강의원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마을을 천천히 걸었다. 

정자나무 아래를 지났다. 

김노인은 오늘도 앉아 있었다. 

 

강의원은 멈추지 않고 걸으면서 손을 들었다. 

김노인이 손을 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후에 그는 박재문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난번 그 말, 

용기 있게 해줘서 고맙다. 

나는 그 말이 필요했다.


답장은 금방 왔다.


교수님이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 자체로 많이 달라지셨다는 걸 알았습니다.


강의원은 문자를 읽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산벚꽃은 이제 거의 졌다. 

대신 연초록 잎이 가지마다 돋아나고 있었다.

 꽃보다 조용했지만, 그것은 계절의 다음 장이었다.


그는 그날 저녁 일기를 썼다. 

은퇴 이후 처음 쓰는 일기였다.


오늘, 나는 세 사람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마음에 있었지만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말하고 나서 가벼워졌다. 

 

판결을 내릴 때는 가벼워진 적이 없었다. 

무거움만 남았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안다.


판결은 닫는 행위다. 

격려는 여는 행위다.
나는 너무 오래 닫는 연습만 했다.



제6장 — 구원 쪽으로


오월이 되었다.
청송의 산은 완전히 초록으로 덮였다. 

강의원은 아침마다 한 시간씩 산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운동을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생각을 위해 걸었다. 

 

발이 땅을 디디는 리듬 속에서 그의 머릿속은 오히려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 좋았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산길에서 뜻밖의 것을 발견했다. 

쓰러진 소나무 한 그루. 

겨울 폭설에 가지가 꺾인 채로 봄을 맞이한 나무였다. 

 

그런데 꺾인 가지 끝에서 새 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가느다랗고 여렸지만, 

분명한 초록이었다.


강의원은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부러진 곳에서 새것이 자란다. 

그는 그것이 자연의 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의 논리이기도 했다. 

박재문이 오랫동안 품어온 말을 마침내 꺼낸 것도,

 이순례가 혼자인 이웃을 향해 된장찌개를 들고 걸어온 것도

 

김노인이 매일 아침 정자나무 아래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그것들은 모두 어딘가 부러진 삶이 만들어낸 새 순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랬다.
서른두 해 동안 판결을 내리며 쌓아온 벽. 

은퇴 후 세상이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외로움. 

 

아내를 잃은 뒤 성경을 펼치지 못한 세 해. 

그것들이 모두 꺾인 가지였다. 

 

그런데 그 가지 끝에서, 

봄이 오고 있었다.


강의원은 산에서 내려오며 생각했다. 

하나님이 심판 대신 구원을 선택하신 이유를. 

 

아마도 하나님은 인간의 부러진 가지를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 부러짐이 범죄였는지 연약함이었는지 따지지 않으셨다. 

그저 그 끝에서 새 순이 돋을 수 있도록 가까이 오셨다.


판결은 멀리서 내린다. 

법정에서, 높은 자리에서,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며. 

 

그러나 구원은 가까이서 이루어진다. 

부러진 자리 바로 옆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며.


강의원은 마을로 돌아와 이순례의 집 앞을 지났다. 

그녀는 마당에서 빨래를 너는 중이었다. 

강의원은 멈추었다.


"순례 씨."


"예?"


"오늘 점심 같이 먹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끓여볼까 합니다."


이순례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오늘은 조용하게 웃었다. 

목소리 없이, 눈으로만.


"잘 하실 수 있겠어요?"


"못 하면 배우면 됩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 무렵, 

강의원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밥을 지었다. 

미역국은 조금 싱거웠고 계란말이는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이순례는 아무 말 없이 다 먹었다. 

그리고 밥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맛있어요."


강의원은 알았다. 

그것이 진심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족한 음식 앞에서 장점을 찾아 말했다. 

단점을 덮어주었다. 

 

그것이 바로 강의원이 배우려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모습에서 오래된 가르침을 새롭게 받았다.


저녁, 서재에 앉아 그는 다시 성경을 펼쳤다.
요한복음 3장 17절. 

아내의 밑줄. 

아내의 필체.


여보, 당신도 이 눈으로 사람을 보면 좋겠어요.
강의원은 이번에는 그 여백에 자신의 글씨로 한 줄을 덧붙였다.
배우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기쁘게.


창밖은 어두웠다. 

그러나 그 어둠은 전과 달랐다. 

무겁지 않았다. 고요했다. 

 

별이 보였다. 

그는 오래 그 별을 바라보았다. 

판결 없이, 분석 없이, 그냥.
아름다웠다.


판단과 구원 사이, 

그 먼 길을 그는 이제 막 걷기 시작했다. 

 

일흔두 살의 봄이었다. 

늦은 봄이었지만, 봄은 봄이었다. 

 

소나무 가지 끝 새 순처럼, 

강의원의 내면에도 조용하고 

여린 초록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첫 발을 떼는 일에 대하여 (from faith to faith)

Songs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