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001 | 안개 속의 사람

 



[안개 속의 사람]


방학이 되면 나는 미국으로 간다. 

몇 달을 기다려 마침내 가족의 품에 안기지만, 

그 시간은 언제나 아침 안개가 걷히듯 소리 없이 지나간다. 

 

자녀들의 웃음소리, 식탁에 둘러앉아 나누던 도란도란한 이야기들, 

함께 걸었던 공원의 오솔길——

그 모든 것이 어제까지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한 현실이었는데, 

오늘 아침이 되자 어느새 기억이라는 이름의 서랍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 있었다.


시차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한국의 새벽은 아직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텍사스의 시간으로는 한낮이 지나 오후의 햇살이 기울어가고 있을 터였다. 

나는 조용히 집을 나와 강변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개가 짙었다.
강도, 나무도, 길도——멀리 있는 것들은 모두 그 하얀 장막 뒤로 물러나 있었다. 

세상은 마치 연필로 조심스럽게 그린 그림 위에 누군가 흰 물감을 넓게 덧칠해 놓은 것처럼 희미하고 몽롱했다. 

소리마저 안개에 흡수되는 듯, 사방이 고요했다.


그때였다. 강변 쉼터 아래, 한 노인이 홀로 앉아 있었다.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안갯속에 그분은 고요히 앉아 계셨다.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지,

무엇을 기다리는지,

혹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저 멀찍이 서서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처음 보는 이의 뒷모습이었건만,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함이 가슴 한켠을 조용히 건드렸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던 것은 그 노인의 뒷모습이었지만,

어쩌면 그 안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끊임없는 반복이라고들 말한다. 

젊은 날에는 그 말이 관념적인 문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하는 횟수가 쌓여갈수록 비로소 알게 된다——

행복했던 시간일수록 더 빨리 지나가고,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오래, 

더 깊이 그리워진다는 것을.


안개는 결국 걷힌다. 

햇살이 비추면 강도 보이고, 길도 보이고, 

지평선 너머 풍경도 다시 선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어떤 안개는 쉽게 걷히지 않는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안개.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슬픔만은 아니다. 

그리움은 함께했던 시간이 그만큼 소중했다는, 

말없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한참을 그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 속의 안개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 새벽의 고요함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안개 속에 홀로 앉아 있던 한 사람의 뒷모습은——

지금도 내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


마치 햇살이 들어도 좀처럼 걷히지 않는, 

옅고 부드러운 안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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