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006 안개가 걷히는 서원
토요일 오후이었다 .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 창문을 두드리던 빗소리는 점심 무렵이 되자 조금씩 잦아들었고 , 서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 나는 이런 날을 좋아한다 . 비가 그친 직후의 산은 평소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 구름은 산 아래로 내려앉고 , 안개는 계곡을 따라 흐르다가 , 어느 순간 산등성이를 타고 천천히 하늘로 올라간다 . 그 짧은 시간 동안 세상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을 허락한다 . 카메라를 챙겨 차에 올랐다 . 목적지는 오래된 서원이 남아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 평소에도 한적한 곳이지만 , 비가 내린 뒤라 사람의 그림자는 더욱 보이지 않았다 . 공원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 젖은 흙냄새가 올라왔고 , 나무들은 비를 머금은 채 더욱 짙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 언덕길을 따라 오르던 중이었다 . 멀리 숲 사이로 한옥 지붕이 보였다 . 처음에는 희미했다 . 그러나 안개가 조금씩 걷히면서 서원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 마치 오래된 그림 한 폭이 천천히 펼쳐지는 것 같았다 .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 눈앞의 풍경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 산이 있고 , 숲이 있고 , 구름이 흐르고 , 그 아래 오래된 한옥이 자리하고 있었다 .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게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 하지만 나는 문득 텍사스에서 살던 시절을 떠올렸다 .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 넓은 하늘 . 광활한 평원 . 그곳에도 아름다움은 있었다 . 그러나 이런 풍경은 없었다 . 비가 그친 뒤 산 아래에 머무는 안개도 , 계곡을 따라 흐르는 구름도 , 숲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