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땅에 떨어진 눈물 한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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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초의 진동,  대낮에 마주한 영원의 확인서 —     제 1장 해묵은 질문 어떤 질문은 대답 없이도  오래 살아남는다. 그 질문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랑의 증거다. 설날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날,  윤호재는 서재 창가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았다.  뜰 안 감나무 가지에 마지막 남은  감 하나가 찬바람에 흔들리다  떨어졌다.  그는 그 감이 땅을 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올해도 또 그 질문이 겨울과 함께  찾아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질문은 단순했다. 아니,  단순한 척하고 있었다. '두 분은 거기서 함께 계실까.' 어머니 이덕순은 오년 전 봄에 떠났다.  아버지 윤기복은 그로부터 육 년 뒤  늦가을에 눈을 감았다.  두 분 모두 어느 나지막한 야산  기슭에 나란히 잠들어 있었고,  윤호재는 해마다 명절이면  그 산을 올랐다.  그러나 그의 발길을 재촉하는 것은  의무만이 아니었다.  의례 아래에는 언제나 그 묵직한  질문이 웅크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만년에 교회로 이끌린 뒤로는  온 마음을 주님께 쏟아,  성경을 무려 13번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셨다. 남편을 위해 눈물로 부르짖던 새벽 기도는, 윤호재가 출근길에 문득 되떠올릴 만큼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달랐다.  평생을 유교와 불교의 관습 속에서  살아오신 분이었다.  아내가 권하는 교회를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기 시작했지만,  성경을 펼쳐본 일은 끝내 없었다.  믿음이라는 것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어머니를 따라  그 세계로 넘어가셨는지.  윤호재는 알 수 없었다. 두 분을 주님께로 인도한 것은  아들인 자신이...

끝난 영화를 혼자 보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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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에서, 오월의 기억 — 제1장 배회 -길은 남아 있고 사람은 사라졌다 친구들과의 하룻밤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전날 저녁, 우리는 고향 읍내 작은 식당에서 소주를 기울이며 오십 년 전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의 기억이 틀리면 다른 누군가가 웃으며 고쳤고, 그렇게 틀리고 고치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야기였다. 자정이 넘어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고, 아침이 되자 하나씩 떠나기 시작했다. 버스 시간, 기차 시간, 손자 돌봄, 병원 예약. 노년의 이별은 늘 그렇게 구체적이고 작은 이유들로 서두른다. 나만 남았다. 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 오르지 않은 오월의 아침, 나는 읍내 거리로 나섰다. 별다른 목적지가 없었다. 그저 걷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 거리가 나를 불러들인다는 느낌이었다. 오십여 년 전부터 나는 이 거리를 알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던 길. 중학교 때 처음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큰길.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늦게까지 거닐다 순경에게 들켜 혼났던 골목. 대학 합격통지서를 품에 넣고 아버지와 나란히 걸었던 은행 앞. 결혼 후 아내와 처음 고향을 찾았을 때 잠시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교회 담장 옆. 그 모든 시절이 이 몇 블록 안에 녹아 있었다. 건물들은 놀랍도록 그대로였다. 교회 첨탑은 오십 년 전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높이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은행 건물은 간판이 한 번 바뀌었을 뿐 벽돌의 결 하나까지 기억 속 그대로였다. 도로가 조금 넓어지고 몇몇 집들이 상가로 바뀌었지만, 그것은 마치 오래된 책의 여백에 다른 사람이 연필로 낙서를 해놓은 것과 같아서, 원래의 문장을 지우지는 못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기억을 되불렀다. 여기서 울었고, 저기서 웃었고, 그 모퉁이에서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기억들이 필름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기억이 또렷해질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 * *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거리 자체는 이...

르호봇 —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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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9QeNRMJFnOY 제1장 — 에섹: 다툼의 우물 그해 봄, 노인은 마당 한 귀퉁이에 앉아  오래된 두레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레박은 쓸 일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수도관이 들어선 뒤로 아무도 우물가를 찾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이따금 그곳에 와서  앉았다.  돌담 위에 이끼가 끼고, 두레박줄이  삭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삶이 저 우물 속에 잠겨  있다는 느낌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이준형. 나이 일흔셋.  경기도 양평 산자락에 홀로 사는  전직 교사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삼십여 년이  지나고,  정년이 지나고, 아내가 먼저 가고.  남은 것은 낡은 집 한 채와 마당의 우물,  그리고 누구도 더 이상 묻지 않는  이름 석 자뿐이었다. 봄바람이 대청마루 끝을 쓸고  지나갔다.  노인은 두레박 끝을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썩은 나무가 부스러졌다. "그래도 파야지." 혼잣말이었다.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그 말은 마당을 가로질러 어딘가로  천천히 사라졌다. 그날 저녁, 서울에서 아들이 전화를  했다.  짧은 안부였다.  요양원을 알아봤다는 말이 뒤에  붙었다.    노인은 전화를 끊고 우물가에  다시 앉았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별이 하나씩 돋았다. "에섹." 그는 그 낱말을 알고 있었다.  오래전 읽었던 성경 구절 한 줄.  다툼이라는 뜻.  빼앗겼지만,  그래도 다시 팠다는  이삭의 첫 번째 우물. 그는 자신의 우물이 무엇으로  막혔는지 그날 밤 처음으로 생각했다. 제2장 — 시트나: 대적의 흙더미 며칠 뒤 마을 경로당에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다른 빛으로 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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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표준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길을 통해  하나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 로마서 3장 23절   제 1 장  다름의 발견 토요일 아침, 공원 산책길 윤기현은 이른 아침부터 운동화 끈을 묶었다. 72살. 정년퇴임한 지 네 해가 지났다. 무릎이 예전 같지 않았고  오른쪽 어깨는 저기압이 오면 먼저 알았다. 그럼에도 토요일 아침만큼은 일찍 일어나  공원으로 향하는 것이 그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아내가 살아있던 시절부터 이어온 걸음이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새 소리가 먼저 맞이했다. 아직 이름 모를 새였다. 그는 평생 새 이름을 외우려 하지 않았다. 이름이 없어도 노래는 아름다웠다. 이름을 알게 되면 오히려 그 울음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걸었다. 벚꽃은 이미 졌고 초록이 밀고 올라오는 4월이었다. 가로수 사이로 아침 햇살이 기울어 내렸다. 그 빛이 잎새마다 다른 각도로 닿았다. 하나같이 같은 초록인데,  빛을 받으면 전부 다른 색이 되었다.   그날 아침 그는 성경 앱을 열었다. 매일 말씀 한 구절을 받는 기능이 있었다. 화면에 뜬 것은 로마서 3장 23절이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표준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그는 잠시 멈추었다. 이 구절을 처음 읽었던 것이 언제였던가. 젊은 날이었다. 그때의 그는 이 문장을 읽으며 코웃음을 쳤다. 신학적 논리의 억지 구성, 권력을 위한 교리. 그렇게 치워두고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걸어왔다. 그런데 지금 이 구절이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에 부쳐두었다가 이제야 도착한 편지처럼. 그는 다시 걸었다. 생각이 따라왔다.   지난 2년간 그는 AI를 공부했다. 명예교수회에 봉사를 하면서  회원들에게 인공지능을 가르쳤다. ChatGPT, Gemini, Cl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