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008 아침은 언제 시작되는가
늦가을의 아침은 서두르지 않는다. 해는 떠오르지만 곧장 세상을 환하게 열어 보이지 않는다. 안개는 쉬이 물러서지 않고, 빛 또한 제 모습을 앞세우지 않는다. 모든 것은 천천히 제 자리를 찾아간다. 영천댐을 따라 걷던 그날, 나는 풍경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한동안 잊고 지내던 마음의 속도를 만나러 갔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살아가며 끊임없이 시작을 말한다. 새로운 계획, 새로운 일, 새로운 계절. 대개 시작이란 더 빨라지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자연은 다른 방식으로 가르친다. 참된 시작은 앞서 달려가는 데 있지 않고 조용히 밝아지는 데 있다고. 정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없이 계절을 건너며 셀 수 없이 많은 아침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햇살이 물 위로 내려앉고 겨울이 와서 머물다 가고 끝내 다시 봄이 돌아오는 일을, 그저 오래, 묵묵히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곳에는 시간을 이기려는 흔적이 없었다. 대신 시간과 다투지 않고 함께 살아온 것들만이 지닐 수 있는 고요한 평안이 남아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특별한 순간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요해질 때 이미 곁에 와 있던 것을 비로소 알아보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그날 영천댐에서 떠오른 것은 아침해만이 아니었다. 조금은 바쁘게, 조금은 앞질러 살아가던 내 마음에도 늦가을의 햇살 하나가 말없이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