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영화를 혼자 보고 있는 사람

— 고향에서, 오월의 기억 —




제1장 배회 -길은 남아 있고 사람은 사라졌다

친구들과의 하룻밤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전날 저녁, 우리는 고향 읍내 작은 식당에서 소주를 기울이며 오십 년 전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의 기억이 틀리면 다른 누군가가 웃으며 고쳤고, 그렇게 틀리고 고치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야기였다. 자정이 넘어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고, 아침이 되자 하나씩 떠나기 시작했다. 버스 시간, 기차 시간, 손자 돌봄, 병원 예약. 노년의 이별은 늘 그렇게 구체적이고 작은 이유들로 서두른다.

나만 남았다.

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 오르지 않은 오월의 아침, 나는 읍내 거리로 나섰다. 별다른 목적지가 없었다. 그저 걷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 거리가 나를 불러들인다는 느낌이었다.

오십여 년 전부터 나는 이 거리를 알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던 길. 중학교 때 처음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큰길.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늦게까지 거닐다 순경에게 들켜 혼났던 골목. 대학 합격통지서를 품에 넣고 아버지와 나란히 걸었던 은행 앞. 결혼 후 아내와 처음 고향을 찾았을 때 잠시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교회 담장 옆.

그 모든 시절이 이 몇 블록 안에 녹아 있었다.

건물들은 놀랍도록 그대로였다. 교회 첨탑은 오십 년 전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높이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은행 건물은 간판이 한 번 바뀌었을 뿐 벽돌의 결 하나까지 기억 속 그대로였다. 도로가 조금 넓어지고 몇몇 집들이 상가로 바뀌었지만, 그것은 마치 오래된 책의 여백에 다른 사람이 연필로 낙서를 해놓은 것과 같아서, 원래의 문장을 지우지는 못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기억을 되불렀다. 여기서 울었고, 저기서 웃었고, 그 모퉁이에서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기억들이 필름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기억이 또렷해질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 * *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거리 자체는 이토록 선명한데, 왜 마음은 점점 무겁게 가라앉는 것일까. 나는 한 카페 앞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젊은 여자가 유모차를 끌고 갔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떠들며 뛰었다. 장을 보고 돌아가는 것 같은 중년 여성이 무거운 봉지를 들고 지나쳤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지금, 끝난 영화를 혼자서 계속 상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영화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관객들은 모두 극장을 떠났다. 그런데 나만 빈 의자에 앉아, 아무도 없는 스크린을 향해 혼자서 필름을 돌리고 있었다. 거리는 스크린이었고, 나의 기억이 그 위에 영상을 투사했다. 하지만 그 영상 속 인물들은—어머니도, 아버지도, 친구들도—이 거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씁쓸했다. 그 씁쓸함은 슬픔과는 조금 달랐다. 슬픔은 뜨겁지만, 이것은 서늘했다. 마치 늦가을 빈 운동장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서늘함.


제2장 목소리들 - 사라진 것들이 남긴 진동

어머니의 목소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말의 내용이 아니라 목소리의 결을. 아침에 나를 깨우던 그 소리는 꾸짖음도 아니고 노래도 아니었다. 그냥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는데, 그 소리 안에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 굳이 말하자면 '나는 여기 있다, 너는 안전하다'는 뜻 같은 것.

그 목소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교회 담장 앞을 지나며 걸음을 멈추었다. 이 담장 옆에서 어머니와 함께 걸은 적이 있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이른 봄이었다. 어머니는 말이 없었고 나도 말이 없었다. 그냥 나란히 걸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침묵이 지금 생각하면 가장 깊은 대화였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은 분이었다. 칭찬도 드물었고, 질책도 드물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눈빛을 기억한다. 내가 무언가를 잘 해냈을 때, 아버지는 말 대신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언어로는 담기 어려운 무게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자랑스러움'이라고 명명하고 싶지만, 사실 그보다 더 넓은 것이었다. 어쩌면 '나의 연장선에 네가 있다'는 어떤 감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의 목소리도 남아 있다. 이 골목에서 불렀던 이름들. 상대의 약점을 놀리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다투는 것도, 밤이 늦도록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그 모든 것이 지금은 내가 돌이킬 수 없는 황금이 되었다.

* * *

나는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그 사람들이 내게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

물질적인 것은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잘 먹이고 잘 입혔지만, 어머니가 내게 준 진짜 것은 음식이나 옷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나를 가르치고 훈육했지만, 아버지가 내게 남긴 진짜 것은 교훈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들이 내게 남긴 진짜 것은 추억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나는 존재한다'는 느낌.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고 있다'는 느낌. 그것이었다.

인간이 혼자서 확인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존재는 타인의 눈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나를 바라봐 주는 눈이 있을 때, 나를 불러 주는 목소리가 있을 때, 나의 존재는 비로소 실재가 된다.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 그 사람들이 없는 이 거리에서, 나는 반쯤 투명해진 사람처럼 걷고 있었다.

그 투명함이 씁쓸함의 진짜 이유였다.


제3장 외면 - 이익이 끝나는 곳에서 등을 돌렸다

걸으면서 나는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이 내게 그토록 소중한 존재였다면, 나는 그들에게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었는가. 나는 그들을 그들의 가치에 맞게 대우했는가. 아픈 질문이었지만, 이 거리에서 혼자 걷는 사람에게 적당히 얼버무릴 상대가 없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대답해야 했다.

아니었다.

나는 이익이 되는 관계에 더 부지런했다. 내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먼저 다가갔고, 더 이상 교환할 것이 없어진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눈길을 거두었다. 그것을 '바쁜 삶'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모두들 그렇게 살지 않느냐는 말로 위안했다.

그러나 지금 이 거리에서, 그 위안이 얼마나 비겁했는지를 나는 안다.

어머니가 노쇠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자주 가지 않았다. 일이 바빴다.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실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 어머니가 원한 것은 내가 가져가는 과일 바구니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원한 것은 나의 눈빛이었다. 나의 목소리가 어머니를 불러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에 인색했다.

* * *

오래전 친구 하나가 생각났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가까웠던 친구였다. 우리는 같은 꿈을 이야기하고 같은 책을 읽었다. 졸업 후 서로 다른 도시로 가면서 자주 연락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연락이 뜸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명절 문자 하나로 일 년이 정리되었다. 그 친구가 크게 아팠을 때, 나는 전화 한 통을 망설이다 결국 걸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색할 것 같았다.

그것이 부끄럽다. 지금 이 순간, 이 거리에서 비로소 부끄럽다.

어색함을 이유로 나는 그를 혼자 두었다. 그러나 어색하더라도 전화를 걸어 주는 것, 더듬더듬 말을 찾으면서도 '나 여기 있다'고 알려 주는 것—그것이 바로 관계였다. 나는 그 단순한 것을 하지 못했다.

이익을 주는 관계, 편한 관계, 갈등 없는 관계. 나는 그런 관계만 선택적으로 유지해 왔다. 그러나 관계의 진짜 깊이는 편할 때가 아니라 불편할 때 드러난다. 어색하더라도 다가가는 것, 이익이 없어도 곁에 있는 것—나는 그런 관계를 만들기에 너무 인색했다.

오월의 햇살이 따뜻했다. 그러나 나는 그 따뜻함을 온전히 느낄 수가 없었다.


제4장 인맥 - 환경이 아니라 사람이 나를 만들었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을 '관계의 그물 속에 걸린 존재'라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그 말을 추상적으로 이해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런 뜻이라고. 그러나 오늘 이 거리를 걸으며 나는 그 말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육체적인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총합이다.

내가 쓰는 언어는 어머니에게서 왔다. 내가 무언가를 끝까지 해내려는 고집은 아버지에게서 왔다. 내가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습관은 오래전 한 선생님에게서 왔다. 내가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질은 젊은 시절 가까웠던 친구 하나가 내 안에 심어 준 것이다. 내가 스스로 만들었다고 여겼던 나의 많은 부분이, 사실은 누군가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었다.

장소는 배경이다. 사람이 이야기다.

이 거리가 아무리 잘 보존되어 있어도, 이 거리가 내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 내 기억을 만든 것은 이 돌과 벽돌이 아니라, 이 돌과 벽돌 사이를 나와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다.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사실 그 고향의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땅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들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 * *

그렇다면 지금 나는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나의 현재를 만들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목소리는 어디서 오는가.

나는 걸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어떤 사람들의 말이 내 하루에 살아 있는지. 어떤 이의 눈빛이 오늘도 내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지. 아내의 말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후배의 열정이 있었다. 멀리 미국에 있는 아들과 딸이 보내오는 사진들이 있었다. 두 손녀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었다. 오십 년 지기 친구들의 어젯밤 이야기가 있었다.

그들은 크든 작든, 조용하든 시끄럽든, 지금 이 순간 나를 나이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이 없으면 이 순간의 나도 없다.

그 단순한 사실 앞에 나는 한동안 멈추어 섰다. 거리의 소음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내 발아래 놓인 보도블록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제5장 감사 - 10점짜리 사람에게 빚진 것들

우리는 완벽한 관계를 원한다.

나를 완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 언제나 나의 편인 사람, 내가 기대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런 관계를 꿈꾼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사람은 없다. 모든 관계는 결핍을 품고 있다. 모든 인연은 어느 지점에서 서로를 실망시킨다.

그렇다고 그 관계들이 가치 없는 것인가.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100점짜리 관계가 아니어도 된다. 10점이라도, 1점이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내 마음에 온기를 남겨 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내게 소중한 사람이다. 그 작은 온기들이 쌓여 내 하루를 유지해 왔다. 내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 작은 온기들 덕분이었다.

나는 그것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다.

더 잘해 주기를 기대했다. 더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조금 더 깊이 들어와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기대의 이면에는, 내가 먼저 더 잘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었다. 내가 먼저 더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었다.

* * *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의 일이다.

나는 그날 병실에서 어머니 손을 잡고 오래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말씀을 잘 못 하시는 상태였다. 나도 말이 없었다. 그냥 손을 잡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나는 그 눈물의 뜻을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내 손을 아주 가만히, 그러나 분명하게 쥐어 주셨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쩌면 그것이 전부였다.

말이 없어도, 설명이 없어도, 그 순간 우리는 완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손의 온도가 언어였다. 그 언어는 어떤 말보다 오래 남았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순간이 필요하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전화 한 통, 짧은 문자, 스쳐 가며 건네는 따뜻한 눈빛. 그것이 관계를 살아 있게 한다. 관계는 거대한 헌신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작고 꾸준한 온기로 유지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도 안다. 나는 일흔에 가까운 나이다. 내 앞에 남은 시간은 뒤에 쌓인 시간보다 짧다. 그렇기에 더욱,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이 존재하기에 나의 이 순간도 존재한다. 그들이 내 삶을 살아 있게 한다.


제6장 현재 - 오늘이 미래의 고향이 된다

오후의 햇살이 기울기 시작했다.

나는 읍내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이 공원은 내가 어린 시절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나무들이 조금 더 굵어졌을 뿐이다. 나무는 해마다 나이테를 하나씩 더한다. 사람도 그렇다. 다만 나무는 굵어질수록 단단해지지만, 사람은 굵어질수록 더 많은 것을 비워야 한다. 집착을, 기대를, 원망을.

비워야 온기가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나는 오늘 이 거리를 걸으며 무언가를 비웠다. 잘 보존된 건물들에 기대어 과거를 붙잡으려 했던 욕망을. 이미 끝난 영화를 혼자서 계속 돌리려 했던 미련을. 과거를 붙잡는다고 그것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오늘 오월의 거리에서 다시 한 번 배웠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으로 아름답게 남겨두어야 한다. 그리움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아름다웠음을 현재에서 인정하는 것이다. 그 인정이 곧 감사다.

* * *

벤치에 앉아 나는 지금 내 삶을 살게 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아내. 나보다 내 건강을 더 챙기는 그 사람. 내가 늦게 들어오는 밤이면 말은 없지만 불을 켜두는 그 사람. 내가 엉뚱한 꿈을 이야기해도 '그렇겠지'라고 받아주는 그 사람.

멀리 미국에 사는 아들과 딸. 시차를 맞춰 영상 통화를 걸어오는 그 목소리. 두 손녀아이들이 할아버지를 찾아 화면 앞으로 달려오는 그 소리.

오십 년을 함께 늙어온 친구들. 어젯밤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기억을 고쳐주던 그 얼굴들.

그들은 모두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나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벤치에서, 그들을 생각하고 있다. 그 생각이 이어지는 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오늘 이 오월의 오후는, 언젠가 내가 다시 기억하게 될 장면이 될 것이다. 그때 나는 이 거리를, 이 벤치를, 이 기울어가는 햇살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오늘의 생각도 함께 남을 것이다.

오늘이 미래의 고향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따뜻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먼저 눈을 맞추는 사람이어야 한다. 오늘의 내가 누군가의 기억에 온기로 남으려면, 오늘 내가 그 온기를 내어주어야 한다. 받기 전에 주는 것, 그것이 내게 남은 시간을 잘 사는 방법이라고 이 거리는 가르쳐 주었다.


* * *

나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고향의 오후 거리는 여전히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낯선 얼굴들이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씁쓸하지 않다. 이 거리가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괜찮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다른 곳에 있다. 그들이 있는 곳이 내 고향이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고향이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감사한 일이다.

오월의 햇살이 낮게 깔리며 거리를 물들였다. 나는 그 빛 속을 걸었다. 그 빛은 따뜻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 따뜻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2026년 5월 23일

고향에서, 오월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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