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을 떼는 일에 대하여 (from faith to faith)
제 1 장 강물은 기억한다
이른 아침, 낙동강 하류의 물안개는 언제나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각, 강 위로 흰 안개가 낮게 깔리고, 그 안개 속에서 물새 한 마리가 소리 없이 날아올랐다.
강영준은 제방 위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일흔두 해를 살아오는 동안 이 강을 수백 번 바라보았지만, 강은 매번 처음 보는 얼굴로 그를 맞았다.
그는 지팡이를 짚지 않았다. 아직은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무릎이 쑤시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새벽 강변을 걷는 것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유일한 의식이었다.
강영준은 대학에서 삼십오 년을 가르쳤다. 국문학을 가르쳤고, 시를 썼으며, 한때는 제법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년퇴직 이후 삼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제자들은 각자의 삶 속으로 흩어졌고, 아내는 이 년 전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은 서울에서 바쁘게 살고 있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라고 그는 생각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 말하지만 들리지 않는 것.
그날 아침, 강변 벤치에 앉아 그는 오래된 성경을 펼쳤다. 낡은 가죽 표지가 손에 익은 물건처럼 손바닥에 맞았다. 그것은 아내가 결혼 초에 선물한 것이었다. 페이지마다 아내의 연필 메모가 남아 있었다. 작고 단정한 글씨들이 여백에 가득했다.
그는 로마서를 펼쳤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그 문장 앞에서 그는 오랫동안 멈추어 있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 그 말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가슴 안쪽을 건드렸다.
그는 평생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막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 아침처럼 막막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강물은 소리 없이 흘렀다. 물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면서 건너편 갈대밭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영준은 아내의 메모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어떤 날 적은 것인지 모를, 작은 글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믿음은 완성이 아니라 방향이에요.
그 문장 곁에는 물음표도 마침표도 없었다. 아내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말했다. 결론이 아니라 문을 여는 방식으로.
제 2장 창세기를 읽는 노인
강영준이 다시 성경을 펼친 것은 그날 오후였다. 방 안에 햇빛이 깊숙이 들어와 마룻바닥 위에 긴 사각형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고 창세기 첫 장을 읽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어릴 때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 그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옛날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러나 이제 일흔이 넘은 나이에 다시 읽으니, 이 문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장인지가 오히려 선명하게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것. 그것도 말 한마디로.
그는 오십 년 가까이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쳤다. 언어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무력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인간의 언어로 쓸 수 있는 창조 이야기란 언제나 이미 있는 것들을 재료로 삼는다. 단군 신화도 그렇고, 그리스 신화도 그렇다.
먼저 있던 혼돈이 있고, 먼저 있던 신들이 싸우고, 그 결과로 세상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창세기는 달랐다. 혼돈조차 없는 곳에서 시작한다. 재료도 없고 전사(前史)도 없다.
그저 말씀만 있었다. 그 상상은 인간의 상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확신처럼 느껴졌다.
영준은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뒷마당의 감나무가 아직 잎을 다 피우지 못하고 있었다. 봄이 늦게 오는 해였다.
아내는 이 감나무를 좋아했다. 여름에는 그늘을 주고, 가을에는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다며.
하지만 작년 가을에는 아무도 감을 따지 않았다. 그냥 감들이 달린 채로 겨울을 났고, 봄이 오자 저절로 떨어졌다.
그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것이, 저 감나무가 감을 맺도록 만들어진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감나무는 감을 맺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지어진 대로 살 뿐이다.
나는 어떤가. 내가 처음 지어졌을 때의 그 상태로 살고 있는가.
아내의 빈자리가 방 안에 가득했다. 그녀가 앉던 의자, 그녀가 읽던 책들, 그녀가 심어놓은 화분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그녀만 없었다. 영준은 잠시 눈을 감았다.
믿음이란 이런 빈자리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얼굴을 돌리는 것인가. 그 얼굴 돌림 자체가 믿음인가.
그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르겠다는 것이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제 3 장 손녀의 첫걸음
전화가 온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아들 영호의 목소리였다.
아버지, 서연이가 오늘 첫걸음 뗐어요. 영준은 순간 말을 잃었다.
서연이가 걸었어?
네. 소파 붙잡고 일어서더니 갑자기 세 발짝을 걸었어요. 그러다 넘어졌는데 자기가 뭘 했는지도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영준은 전화를 끊고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손녀 서연은 이제 열한 달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두 달 전, 아들 집에 갔을 때였다.
그때 서연은 네 발로 기어다니며 온 집 안을 누비고 있었다. 그 아이가 일어섰다.
영준은 눈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왜 눈물이 나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손녀가 걷는다는 사실이 반갑고 기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무언가 더 깊은 곳에서 흔들리는 것이 있었다.
아이는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일어선다. 아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선다.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첫걸음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을 보는 부모는 아이가 잘 걷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일어섰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한다.
그는 오늘 아침 읽은 성경 구절을 다시 떠올렸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아이의 첫걸음은 완성된 걸음이 아니다. 그것은 걸음의 시작이다. 그 시작이 다음 걸음을 부르고, 그 다음 걸음이 또 다음을 부른다.
믿음도 그런 것 아닐까. 완전한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첫걸음의 믿음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
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열었다. 바깥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강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잠시 그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서연아, 잘 넘어지고 잘 일어나거라. 할아버지도 오늘 한 번 더 일어서 보마.
그는 중얼거렸다.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제 4장 의로운 사람이란
다음날 아침, 영준은 평소보다 일찍 강변에 나갔다. 안개가 아직 짙게 깔려 있었다.
물새들이 물 위를 낮게 날았다. 그는 어제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 하나를 안고 걸었다.
의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로마서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의인이란 누구인가. 정직한 사람인가. 선한 말을 하는 사람인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인가.
영준은 자신의 삶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의롭게 살았는가 하면,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제자들에게 언제나 공정했는가. 아내에게 늘 다정했는가. 이웃에게 관심을 가졌는가.
하나하나 떠올리면, 그렇지 못했던 순간들이 더 선명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내의 말을 흘려들은 날들. 논문 심사에서 사적인 감정이 개입했던 일. 도움을 요청하는 제자에게 냉정했던 기억.
그는 제방 위에 서서 강을 내려다보았다. 강물은 어제도 오늘도 같은 방향으로 흘렀다. 흘러가면서 돌아보지 않았다. 그 단순한 일관성이 문득 부러웠다.
그런데 어쩌면, 의롭게 산다는 것이 완전하게 산다는 뜻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마음, 그 방향 자체가 어쩌면 의로움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결과가 아니라 방향. 도달이 아니라 걸음.
영준은 주머니에서 낡은 수첩을 꺼냈다. 아내가 쓰던 것을 그가 이어받아 쓰는 수첩이었다. 그는 천천히 적었다.
의로운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을 향해 오늘도 한 발을 내딛는 사람이다.
써놓고 보니, 그것이 아내가 하던 말과 비슷했다.
믿음은 완성이 아니라 방향이에요.
그는 웃었다. 이 년이 지나도록 아내의 말이 여전히 그에게 길을 가르치고 있었다.
강 건너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빛이 수면 위에 흩어지며 잔잔한 파문을 만들었다. 영준은 한참 그 빛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제 5 장 보시기에 좋았더라
봄이 깊어지는 어느 오후, 영준은 오래간만에 동네 교회에 들어갔다. 예배 시간도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앉아 있고 싶었다.
교회 안은 비어 있었다. 햇빛이 창유리를 통해 들어와 나무 의자 위에 내려앉았다.
그는 맨 앞줄에 앉지 않고,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어릴 때부터 그런 자리를 좋아했다.
너무 앞도 아니고 너무 뒤도 아닌, 그저 거기 있는 자리.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기도를 하려 했지만,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언가를 청하는 것도, 감사드리는 것도, 지금 이 순간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냥 있는 것,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그는 창세기의 그 구절을 생각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을 보시고 하셨다는 말.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만드시고 그 말씀을 하셨다면, 그 처음의 상태란 어떤 것이었을까.
두려움이 없는 상태.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 있는 그대로가 충분한 상태.
지금 나는 그 상태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가.
영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음속이 꽤 오래 고요했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이상한 온기가 느껴졌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두렵지 않은 것.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것. 지금 이 자리에 있어도 괜찮다는 것.
그는 오랫동안 그 온기 안에 앉아 있었다.
교회를 나설 때, 마당 귀퉁이에 작은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꽃이었다.
누가 심은 것인지, 아니면 저절로 난 것인지도 몰랐다.
꽃은 그냥 거기 있었다. 피려고 애쓴 흔적도 없이, 그냥 봄이 오니 피어 있었다.
하나님이 저 꽃도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겠지. 영준은 잠시 그 꽃 앞에 멈추었다가,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제 6 장 강은 오늘도 흐른다
며칠 후, 영준은 아들 집에 다녀왔다. 서연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서연이는 이제 제법 걷고 있었다. 여전히 비틀거렸고, 여전히 자주 넘어졌다. 그러나 넘어질 때마다 잠시 울다가 다시 일어났다.
아이는 포기라는 것을 몰랐다. 넘어지는 것이 걷는 것의 일부라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었다.
영준은 한참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서연이 자신의 두 발로 그에게 다가왔을 때, 그는 무릎을 꿇고 아이를 받아안았다.
작고 따뜻한 몸이 그의 가슴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영준은 창밖의 들판을 바라보았다. 봄 논에 물이 들어차고 있었다. 농부들이 트랙터를 몰며 밭을 갈고 있었다. 그 단순한 풍경이 오늘따라 유달리 아름다웠다.
그는 수첩을 꺼내 적었다.
나는 오늘 서연이의 걸음에서 믿음을 보았다. 완성되지 않은 걸음,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걸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걸음.
그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은 내가 잘 걷기를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오늘 일어서기를 기뻐하신다.
기차가 낙동강 철교를 건넜다. 강은 오늘도 흘렀다. 저녁 햇살을 받아 수면이 금빛으로 빛났다.
강은 빛이 있으면 빛을 받고, 비가 오면 빗물을 받고, 그냥 흘렀다.
판단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제 방향으로.
영준은 창에 이마를 가만히 기대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오늘의 한 걸음이 내일의 한 걸음을 부른다. 나는 아직 걷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강물은 소리 없이 흘렀다. 그리고 강은 기억했다.
이 늙은 사람이 오늘도 강변에 섰다는 것을. 흔들리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완전하지 않아도 다시 일어섰다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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