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002 벚꽃길을 걷는 사람

 


4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다.

영남대학교 캠퍼스는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듯 고요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벚꽃길로 향했다. 인기척이 사라진 길 위에는 

밤사이 피어난 꽃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고, 길 양쪽으로 늘어선 

벚나무들은 하얀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공기 속에서 

꽃잎은 스스로의 빛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길을 '러브로드'라 부른다. 봄이 오면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걷고, 

친구들이 웃으며 사진을 남기는 곳. 젊음이 가장 환한 얼굴로 지나가는 길이다. 

그러나 그날 아침, 그 길은 누구의 것도 아닌 채 비어 있었고, 그 비어 있음이 

오히려 더 충만하게 느껴졌다.


그때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길 한가운데를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한 주민. 누구와 함께도 아니었고, 

무엇에 쫓기지도 않는 걸음이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고, 

시선은 어디에도 붙들려 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속도로, 길 위에 발걸음을 

하나씩 놓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셔터를 누르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벚꽃은 화려했지만 그 사람은 화려하지 않았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평범한 

뒷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평범함이 꽃보다 먼저 마음에 들어왔다. 

아마도 그 걸음이 어떤 목적도 증명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시절의 나는 늘 목적지를 생각하며 걸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 남들보다 얼마나 앞서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묻곤 했다. 길은 언제나 통과해야 할 구간이었고, 

시간은 쫓아가야 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걷는 동안에도 마음은 늘 도착 이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길의 의미는 조금씩 달라졌다.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걷기 위해 걷는 시간이 생겼다.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아도 되는 걸음이 삶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때 비로소 길은 하나의 풍경이 되었고,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머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벚꽃은 매년 핀다. 그리고 매년 진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봄이 오면 다시 벚꽃을 찾아간다. 

어쩌면 사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모두 떠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하고, 만나고, 기다리고, 함께 걷는다. 

사라질 것을 알기에, 지금의 걸음이 더 또렷해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제야 셔터를 눌렀다.

사진 속에는 여전히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지만, 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길을 걷고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이다. 그 사람은 아마 이 사진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날의 봄은, 꽃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의 걸음으로 남아 있다.


가끔 그 사진을 꺼내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묻는다. 인생은 꽃이 피는 순간 속에 있는가, 아니면 

그 꽃길을 조용히 걸어가는 시간 속에 있는가 하고. 

그리고 대답 대신, 

다시 한 번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본다. 

그 안에 이미 답이 놓여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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