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003 물안개 위에 내린 빛
늦가을 어느 토요일 새벽 4시였다.
세상은 아직 잠들어 있었고,
나만 깨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카메라를 챙겨 들고 운문댐으로 향했다.
산길은 어두웠다.
가끔 헤드라이트 불빛이 나무 사이를 스치고 지나갈 뿐,
주변은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10월의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집 안에 있을 때보다 가벼웠다.
아마도 그 무렵의 나는 자연을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을 찾아다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댐에 도착했을 때
물 위에는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안개는 물결처럼 움직였고,
산과 호수의 경계는 사라져 있었다.
세상은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 너머에서 햇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희미한 빛이었다.
그러나 곧 물안개 위로 금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햇살은 안개를 비추고 있었고,
안개는 빛을 품고 있었다.
마치 하늘과 땅이 함께 만들어 내는 한 편의 공연 같았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셔터를 눌렀다.
한 장.
또 한 장.
그리고 또 한 장.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기러기 아빠였다.
가족은 멀리 있었고,
집에 돌아가도 기다리는 목소리가 없었다.
외로움은 늘 마음 한편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연 속에서는
그 외로움이 조금 작아졌다.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물안개도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런데도 충분했다.
햇살이 안개를 품어 주듯,
자연은 말없이 사람의 마음을 품어 주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도 이 사진을 바라보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진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 새벽의 공기,
차가운 바람,
가슴 깊이 스며들던 고요함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외로움이 사라졌기 때문에 행복했던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안고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나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물안개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날의 햇살도 지나갔다.
그러나 그 새벽에 받은 위로는
지금도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다.
마치 물안개 위에 내려앉던
그 첫 햇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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