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007 금빛 바다를 이고 가는 여인

 


따뜻한 봄날,

감포의 새벽은 고요했다. 밤과 아침이 아직 완전히 갈라지지 않은 시간, 동해 바다 위로 해가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수평선 가까이에서 시작된 빛은 잔잔한 물결을 따라 번져 나갔고, 바다는 조금씩 금빛으로 물들어 갔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해안가를 걷고 있었다. 새벽 바다를 찍기 위해서였다. 빛이 바다에 닿는 순간은 늘 짧고, 그래서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물결 위에 얇게 놓인 빛, 바람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리는 수면,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새벽의 바다는 말이 없는데도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시선은 바다에서 한 사람에게로 옮겨 갔다. 머리에 물통을 인 한 여인이 해안 길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역광 속에 잠긴 뒷모습이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바다 쪽에서 밀려온 빛이 여인의 어깨선과 물통의 가장자리를 희미하게 감싸고 있었다. 걸음은 느렸고, 흔들림은 거의 없었다. 오랫동안 몸에 밴 균형이 느껴지는 걸음이었다. 금빛으로 번지는 바다와 그 앞을 지나가는 한 사람. 어린 시절에는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새벽이면 누군가는 우물가로 향했고, 누군가는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돌아오곤 했다. 그때는 그런 모습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심히 지나쳤던 장면들이 문득 돌아와, 한 시대의 표정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그날 내가 본 것도 그런 풍경이었다. 눈부신 일출이 있었고, 바다 위에는 찬란한 빛이 흘렀다. 사진 속에 남은 것은 풍경의 아름다움만이 아니었다. 그 빛을 가로질러 걸어가던 한 사람의 시간이 함께 남았다. 여인은 아무 말 없이 걸어갔다. 빛은 그 앞에 길처럼 놓였고, 바람은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 여인은 물을 나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한 시대의 시간을 이고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누군가를 위해 하루를 시작하고, 제 몫의 시간을 묵묵히 살아내며, 오랜 세월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걸어가는 사람. 바다보다 오래 남는 것은 어쩌면 이런 모습인지도 모른다. 금빛 물결 앞을 지나가던 한 사람의 뒷모습, 그리고 그 뒷모습 안에 잠겨 있던 삶의 시간이다. 사진은 풍경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풍경 속을 지나가던 시간을 오래 붙잡아 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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