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009 새 한 마리가 건네준 선물

 


가을 아침의 산은 서두르지 않았다.

 

밤새 능선을 감싸고 있던 안개도,

그 아래 잠잠히 물을 품고 있던

호수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조차 제때를 재촉하지 않았다.

자연은 늘 인간보다 느린 시간으로

하루를 연다.

 

그날 나는 운문댐을 지나고 있었다.

산허리에 걸린 안개가 눈에 들어왔다.

 

희고 엷은 것이 산의 윤곽을

다 지우지 않은 채 머물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꺼냈다.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그 앞에 서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안다.

풍경이란 곧바로 제 모습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안개의 결이 풀리는 순간,

빛이 낮아지는 순간,

산과 물 사이의 거리가 문득

한 장면 안에서 고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셔터는 대개 그 뒤에 눌린다.

 

새는 바로 그때 나타났다.

한 마리였다.

안개 앞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너무 짧아서,

지나간 뒤에도 방금 본 것이 실제였는지

잠시 의심하게 되는 그런 찰나였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사진은 그렇게 찍혔다.

 

사람들은 그런 순간을 두고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운이라는 것도 아무 데나

내려앉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나는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 새는 누구에게나

날아간 것이 아니었다.

 

이미 지나가 버릴지 모르는

순간 앞에서 조금 더 머무르기를 택한

사람 앞을 스쳐 갔을 뿐이다.

 

얼마 뒤 이 사진은 500PX에서

A+ 95점을 받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도

그 장면이 닿았다는 사실은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게 남은 것은 점수가 아니었다.

 

사진을 볼 때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날의 공기였다.

 

서늘한 아침의 감촉,

산허리에 걸린 안개의 높이,

물가에 번져 있던 적막, 그리고

예고 없이 장면 안으로 스며들던 작은 날갯짓.

 

사진은 눈앞의 풍경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시간까지 함께 붙들어 둔다.

 

생각해 보면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오래 준비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더 기다리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시간,

그래서 거의 체념에 가까운 마음으로 서 있게 되는 시간이 있다.

 

그러다가도 어떤 것은 뜻밖에 찾아온다.

사람들은 대개 그 결과만을 기억하지만,

어쩌면 중요한 것은 그 이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오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 있었던 마음,

 

그 보이지 않는 기다림이 이미 한쪽에서

천천히 세계를 바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는 지나갔고, 안개는 걷혔다.

가을 또한 오래전에 그 자리를 비웠다.

 

그런데도 어떤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 장의 사진 속에 남아,

흘러간 시간보다 더 오래 그 자리에 머문다.

 

그래서 사진은 풍경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세계와 마주했던

단 한 번의 우연을 끝내 잊지 않으려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삶에서 가장 귀한 것들은

대개 준비한 방식대로 오지 않는다고.

 

다만 그것들은,

오래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고.



*참고*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xKaB3FfOud3EL4RWaF_qGJWv9R6BvNK2&si=P7OATaX0unq3lW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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