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힘 위에서

 






제1장 — 일요일 아침의 말씀


겨울이 끝나가는 일요일이었다.

윤기현은 여섯 시 반에 눈을 떴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정년을 한 지 사 년이 지났지만 몸은
여전히 강의실로 가야 하는 사람처럼
아침을 서두르곤 했다.
그는 천장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창밖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흐린 빛이었다.
눈이 올 것 같은 하늘이었다.

냉수 한 컵을 마셨다.
성경을 책상 위에 펼쳤다.
디모데후서.
오늘은 거기서 멈추게 되어 있었다.
어떤 날은 그랬다.
손이 멈추는 구절이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마음이니라.

그는 그 구절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오래 머물렀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편했다.
 
로마의 지하 감옥.
불이 꺼지는 세계.
그 안에서 이 말이 쓰였다는 사실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허세이거나 망상이거나,
아니면 그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였다.

윤기현은 그것을 쉽게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삼십오 년을 교단에 섰다.
공학부였다.
수식과 증명과 실험 데이터.
그것이 그의 세계였다.
 
믿음은 나이가 들면서 천천히,
어쩌면 마지못해,
그의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아내를 잃은 해가 있었다.
그 이후였다.
신앙이 위안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고,
그것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기까지는 또 몇 년이 걸렸다.

그는 창가에 앉았다.
커피를 내리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그 구절을 마음속에
되뇌었다.

능력. 사랑. 절제.

세 단어가 따로 놀지 않았다.
어딘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윤기현은 그것을 쫓지 않기로 했다.
오래 교단에 서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이해는 가끔 기다려야 온다는 것이었다.

밖에서 새 한 마리가 울었다.
창틀 너머로 가느다란 소리였다.
겨울을 넘긴 새였다.
그는 잠시 그 소리에 귀를 맡겼다.

그날 오전 내내 그 구절이 떠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먹는 밥이었다.
아들은 미국에 있었고,
딸도 마찬가지였다.
 
이 집에 혼자 산 지 오래되었다.
불편하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
일이 년뿐이었다.
이제는 혼자라는 것이 일상이었고,
일상은 불편함보다 익숙함에 더
가까웠다.

그는 오후에 노트를 꺼냈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강의 노트가 아니라 그냥 생각을
쓰는 노트.
가끔 그렇게 쓴 것들이 나중에 뭔가가 되기도 했다.
그는 세 단어를 적었다.

능력. 사랑. 절제.

그리고 한참 동안 펜을 들지 않았다.

창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예보에는 없던 눈이었다.
작은 눈송이들이 흐린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특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바라보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떤 생각이 스쳤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두려움 없이
살았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대답은 금방 왔다.
그렇지 않았다.
두려움은 언제나 있었다.
 
아내가 아플 때. 아이들이 어릴 때.
그리고 정년 이후,
쓸모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것이 어쩌면 가장 오래 남아 있었다.

그러나 말씀은 두려움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두려움은 우리 안에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다른 것이라고.

윤기현은 그 차이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눈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창문 하나를 가득 채우는 흰 세계였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그냥 앉아서
그 세계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쓸 수가 없었다.

어떤 날은 침묵이 가장 정직한
대답이었다.
 

제2장 — 에너지라는 이름의 은혜

이튿날 오전, 윤기현은 지하철을 탔다.

그가 매주 화요일에 가는 곳이 있었다. 대구 도심의 작은 교육관이었다.
정식 명칭은 '시니어 디지털 교육
센터'라고 쓰여 있었지만,
다들 그냥 '화요 모임'이라고 불렀다.
그가 거기서 AI를 가르친 지 두 해가
되었다.

처음에는 구청 담당자가 부탁을
해 왔다.
명예교수시고, 공학 전공이시고,
시간도 있으시지 않겠냐고.
 
윤기현은 그 말의 순서가 마음에
걸렸다.
시간도 있으시지 않겠냐.
그것이 정중한 말인지 안쓰러운 말인지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하겠다고 했다.

교육관 건물은 낡았다.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이 층 계단을 올라가면 좁은 복도가
나왔고,
복도 끝에 강의실이 있었다.
 
강의실이라고 하기에는 작았다.
접이식 테이블 다섯 개에 의자를 놓으면 열다섯 명 정도가 앉을 수 있었다.
칠판 대신 낡은 스크린이 있었고,
빔 프로젝터는 시작할 때 항상
십 분 정도 예열이 필요했다.

그가 들어갔을 때 여섯 명이
이미 와 있었다.

일흔셋의 이복남 씨.
전직 학교 선생이었다.
늘 가장 먼저 왔고,
노트에 받아쓰기를 했다.
받아쓰기를 하면서도 놓쳤다.
그래도 노트를 버리지 않았다.

예순여덟의 박명호 씨.
은퇴한 공무원이었다.
한 번 배운 것을 집에 가서 반드시
다시 해 보는 사람이었다.
대신 집에서 되지 않으면 전화를
해왔다.
밤 열 시에도.

일흔다섯의 최춘자 씨.
유일한 여성 수강생이었다.
노트북 대신 태블릿을 가지고 왔다.
태블릿으로 ChatGPT를 쓰는 법을
가르치려면 설명이 달라져야 했다.

그리고 강 씨. 그는 성만 알았다.
나이도 정확히 몰랐다.
일흔 언저리였다.
그는 매번 늦게 왔고, 맨 뒤에 앉았다.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기현은 그가 가장 열심히
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이 달랐다.

윤기현은 노트북을 열고 스크린을 켰다.

"지난 주에 프롬프트 작성법까지 했죠.
오늘은 직접 해봅시다.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나 써보세요.
짧게요.

세 문장 정도.
그걸 ChatGPT에 입력해서 뭔가
만들어 봅시다."

이복남 씨가 손을 들었다.

"교수님, 제 이야기는 별거 없는데요."

"별게 없는 이야기가 가장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그러나 진심과 현실은 달랐다.
이복남 씨는 세 문장을 쓰는 데
이십 분이 걸렸다.
박명호 씨는 ChatGPT에 로그인하다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
최춘자 씨는 태블릿 화면이 너무 작다며 돋보기를 꺼냈다.
강 씨는 아무것도 타이핑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윤기현은 한 명 한 명 곁에 갔다.
허리를 굽히고 화면을 같이 보았다.
같은 말을 세 번 하기도 했다.
네 번 하기도 했다.
숨을 고르면서.

두 시간이 지났다.

이복남 씨는 결국 한 문장을
ChatGPT에 입력했다.
'나는 어릴 때 강가에서 살았습니다.'
그 문장에서 ChatGPT가 만들어낸
짧은 이야기를 보고
이복남 씨는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작게 웃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윤기현은 피곤함을 느꼈다.

몸이 아닌 다른 곳의 피곤함이었다.
무엇이라고 정확히 말하기 어려운
피로였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지하철이 지상 구간을 달리고 있었다.
겨울 도시가 창에 스쳐 지나갔다.

능력이란 결국 에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힘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오늘도 그랬다.
그는 가르치고 싶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두 시간 후 그에게 남은 것은
지침이었다.
선의와 피로가 같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혼자서는
만들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몸이 음식으로 살아가듯 사람은
외부에서 공급받아야 했다.
그 공급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달랐다.

그에게는 아침의 말씀이었고,
가끔은 이복남 씨의 작은 웃음이었다.

지하철이 역에 멈추었다.

윤기현은 그 생각을 마저 잡으려다
그냥 두었다.
생각은 잡으려고 할수록 흩어지는 것이었다.
 

제3장 — 흘러가는 사랑에 대하여

삼월이 되었다.

눈이 녹고 나자 도시는 곧바로 회색으로 돌아갔다.
봄이 오는 것은 꽃이 피기 전까지는
소리 없이 왔다.
윤기현은 그것이 좋았다.
갑작스러운 것들은 언제나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날도 화요일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수강생들이 떠난 뒤,
강 씨가 남아 있었다.

그는 맨 뒤에 앉아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타이핑하지 않은 화면이었다.
윤기현이 가방을 싸다가 그것을 보았다.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강 씨가 고개를 들었다.

"저는 딱히 갈 데가 없어서요."

그 말이 가볍게 나왔지만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윤기현은 가방을 내려놓고 옆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왜 안 쓰셨어요."

강 씨는 잠시 말이 없었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제 이야기를 쓴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제 이야기가 뭔지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있긴 한데요." 강 씨가 화면을 다시
보았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서요.
지금하고는 상관없는 것들이에요."

윤기현은 그 말을 받지 않았다.
받아서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무언가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옆에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 어릴 때 교사였어요."
강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삼십 년 했는데.
퇴직하고 나서는 아무도 제가
교사였던 거 관심 없더라고요.
당연한 건데, 그게 이상하게 오래
가더라고요."

윤기현은 그 말을 들었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기 오는 것도 사실은 심심해서
온 거예요.
배워야겠다는 생각보다.
근데 여기 와서 보니까,
교수님이 설명하는 거 보면서,
저도 저렇게 했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학생들한테 뭔가 가르치려고 했는데
안 되면 답답하고,
잘 되면 좋고."

"지금도 그러십니다.
이복남 씨 웃는 거 보셨어요,
저번에."

강 씨가 잠깐 생각하는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봤어요."

"저는 그게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강 씨가 잠시 윤기현을 보았다.
오래 보지는 않았다.

"교수님은 외롭지 않으세요."

물음이었지만 물음표가 없는 말이었다.
윤기현은 그것을 질문으로 받지 않았다.

"외롭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 말이 뜻밖에 쉽게 나왔다.
준비한 말이 아니었다.

"근데 외로운 것과 혼자인 것은
다른 것 같아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때가 있고,
사람들 속에서 더 외로울 때가 있으니까."

강 씨가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 말을 어딘가에 얹어두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한참 그렇게 앉아 있었다.
빔 프로젝터가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
윤기현은 그것을 끄러 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강의실에서 강 씨와 나눈 것이
사랑이었는가,
하는 물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낮은 곳에서 오는
물음이었다.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어도
흘러가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은 달랐다.

가르치면서 보람을 원했다.
반응을 원했다.
변화를 원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돌아오는 것 없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강 씨와 앉아 있던 시간은 달랐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그 시간에 윤기현은 아무런 보람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그 시간이 가장 진짜 같았다.

진짜 사랑은 어쩌면 그렇게 생겼는지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느끼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고,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

집 앞 골목에 목련이 피어 있었다.
아직 완전히 피지 않은 봉오리였다.
그것을 보고 그는 잠시 섰다가
다시 걸었다.


제4장 — 절제라는 이름의 좁은 문

사월이 되었다.

봄이 왔다는 것은 이제 틀림없었다.
교육관 건물 앞 가로수에 연초록 잎이 돋았다.
윤기현은 그 앞을 지나면서 지난 겨울이 꽤 길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사이 수강생이 두 명 더 늘었다.
열 명이 되었다. 구청 담당자가
기뻐했다.
SNS에 홍보를 해서 더 모으겠다고
했다.
 
윤기현은 그 말을 들으면서 무언가
조용한 불편함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날 바로 알지
못했다.

그 불편함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며칠 뒤였다.

모임이 끝나고 복도에서 수강생 중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새로 온 예순다섯의 남성이었다.

이름은 정재욱이었다.
그는 목소리가 컸고 말이 많았다.

"교수님, 저 유튜브 시작하고 싶어서요.
제가 한 분야에 경험이 있거든요.
ChatGPT로 대본 쓰는 것도 가르쳐
주실 수 있어요?"

"그렇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저한테 개인 지도 같은 거
가능할까요?"

윤기현은 그 말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여기서 같이 배우는 것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그것이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진심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정재욱 씨의 말 속에는 자신이
더 특별하게 배울 자격이 있다는
전제가 들어 있었다.

그것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다시,
자신 안에서 그 불편함이 왜 나오는지를 묻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공평함인가.
아니면 번거로움을 피하려는 것인가.
혹은 이 사람이 내 모임의 성격을
바꾸는 것에 대한 저항인가.

그는 그 물음을 쉽게 풀지 못했다.

그날 밤, 아들에게서 영상 통화가 왔다.
아들은 근황을 물었다.
윤기현은 잘 지낸다고 했다.
 
아이들 얘기를 들었다.
손녀가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작은 손녀가 '할아버지'를 발음하는
영상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통화가 끝나고 그는 다시 노트를
펼쳤다.

절제.

그 단어 앞에서 그는 오래 앉아 있었다.

혼자 있을 때의 절제는 쉽다.
욕심을 부릴 대상이 없으니까.
그러나 사람들이 모이고 관계가
생기면 달라진다.
 
내가 원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욕심이 섞인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구청 담당자가 수강생을 늘리겠다고
했을 때의 그 불편함.
정재욱 씨가 개인 지도를 요청했을
때의 그 불편함.
그 두 가지는 같은 불편함이었는가,
다른 불편함이었는가.

윤기현은 솔직하게 살피려 했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불편함을 느꼈다고 해서
그 불편함이 옳은 것은 아니었다.
불편함도 점검해야 했다.

수강생이 늘면 강의가 더 어려워진다.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이 모임이 내 방식대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 않은가.
내가 설계한 분위기를 지키고
싶은 마음.
그것은 진지함인가, 집착인가.

그 경계를 그는 밤새 구분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구청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수강생 수를 열두 명으로 제한하고
싶다고.
인원이 너무 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담당자는 알겠다고 했다.

그 결정이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절제란 어쩌면 정답이 아니라 그때마다 되묻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제5장 — 씨앗 하나

오월의 어느 화요일.

이복남 씨가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윤기현이 그 소식을 들은 것은 수업
시작 전이었다.
이복남 씨가 태블릿을 들고 와서
보여주었다.

'이복남의 강가 이야기'라는
채널이었다.
 
구독자는 세 명이었다.
본인과, 아마도 가족 두 명이었다.
영상은 하나 올라가 있었다.
삼 분 이십 초짜리였다.

윤기현은 그 영상을 열어보았다.

이복남 씨의 목소리였다.
화면은 강 사진이었다.
낙동강이라고 했다.
 
어릴 때 살던 곳 근처.
그 시절 이야기를 천천히,
더듬더듬 말했다.
편집은 없었다.
자막도 없었다.
중간에 숨 넘기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그러나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가슴을 눌렀다.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이복남 씨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그는 했다.

두 달 전 세 문장을 타이핑하는 데
이십 분이 걸렸던 사람이,
혼자서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잘 만드셨습니다."

윤기현이 말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이복남 씨는 "별거 없죠" 하고 웃었다.
그러나 앉는 자세가 달랐다.
조금 더 펴져 있었다.

그날 수업에서 윤기현은 방향을
바꾸었다.

지금까지는 모두에게 같은 것을
가르쳤다.
그날부터는 달랐다.
이복남 씨에게는 영상 편집 기초를
가르쳤다.
박명호 씨에게는 ChatGPT로 쓴 글을 정제하는 법을 가르쳤다.
강 씨에게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보라고 했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동행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강 씨가 남았다.
또 맨 뒤에 앉아서.

"저도 해보고 싶어요."

그것이 그 달 강 씨가 처음으로
한 자발적인 말이었다.

"뭘요."

"이복남 씨처럼. 영상은 아니어도,
뭔가 써보고 싶어요."

윤기현은 그 말을 받았다.

"쓰면 됩니다."

"잘 못 써도요."

"잘 못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강 씨가 노트북을 열었다.
처음으로 화면에 손가락을 얹었다.
윤기현은 뒤로 물러섰다.

한 글자, 한 글자.

강 씨는 느렸다.
그러나 지웠다 썼다 하면서 천천히
채워갔다.
윤기현은 간섭하지 않았다.
옆에 있었다.

삼십 분 뒤 강 씨의 화면에
다섯 문장이 있었다.

모든 사람을 끌고 가는 것이 가르침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 씨앗 하나를 심는 것이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그때 왔다.

아니, 왔다기보다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비로소
믿어지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로수 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초여름으로 가는 바람이었다.

그는 걸으면서 그 바람을 맞았다.
특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그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제6장 — 보이지 않는 흐름 위에서

유월이 되었다.

화요 모임은 계속되었다.
수강생들은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것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복남 씨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열일곱 명이 되었다.
 
강 씨는 짧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는 아니었다.
그냥 메모장에 저장해두는 글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강 씨는 말했다.
윤기현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어느 화요일 오후, 윤기현은 혼자
교육관에 남았다.

수강생들이 다 떠나고 강의실에
혼자 있었다.
접이식 의자들을 접어서
벽에 세워두었다.

빔 프로젝터를 껐다.
창문을 하나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그는 창가 의자에 앉았다.

오늘 수업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이복남 씨가 편집 기능을 처음 써본 것.
박명호 씨가 드디어 혼자 로그인에
성공한 것.
정재욱 씨가 처음으로 다른
수강생을 도와준 것.
강 씨가 오늘은 세 문장을 먼저 써놓고 와서 보여준 것.

아무것도 대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년 전과는 달랐다.
어디가 달라졌는지를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것은 숫자가 아니었다.
 
구독자가 늘었고 글이 늘었지만
그것이 핵심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조용한 어딘가가 달라져
있었다.

윤기현은 그 달라짐의 이름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면 무언가 고정되는 것
같았다.
그냥 두는 것이 더 정직한 것 같았다.

창밖으로 가로수가 보였다.
여름 잎들이 빽빽했다.

사월에 연초록이었던 것이 이제
깊은 초록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그냥 일어난 일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그는 노트를 꺼냈다.

오래전 일요일 아침에 적어두었던
세 단어가 있었다.

능력. 사랑. 절제.

그는 그것을 다시 보았다.

반년 전에는 이 세 단어가 따로따로처럼 보였다.
 
능력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이 있어야 힘이 바르게 쓰이고,
절제가 있어야 오래 지속된다.
그것을 머리로는 알았다.

지금은 달랐다.

그것이 순서가 아니라는 것을.
하나를 먼저 갖추면 다음이 오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세 가지가 한꺼번에,
불완전하게,
뒤섞여서 작동하는 것이라는 것을.

능력은 늘 충분하지 않았다.
사랑은 늘 순수하지 않았다.
절제는 늘 흔들렸다.
 
그러나 그 부족함 속에서도 무언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그 흐름이 어디서 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은혜라는
이름의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윤기현은 노트를 닫았다.
창을 닫았다.
가방을 들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는 다음 화요일에 이복남 씨에게 자막 넣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강 씨에게는 메모장 말고 다른 데에도 써보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박명호 씨에게는 영상에 음악을 넣는 법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저녁 바람이 불었다.
그는 그 바람을 잠시 맞았다.
어디론가 가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알 필요가 없었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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