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빛으로 빛나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표준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길을 통해 하나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 로마서 3장 23절

 


제 1 장 다름의 발견


토요일 아침, 공원 산책길

윤기현은 이른 아침부터 운동화 끈을 묶었다.

72살. 정년퇴임한 지 네 해가 지났다.

무릎이 예전 같지 않았고 

오른쪽 어깨는 저기압이 오면 먼저 알았다.

그럼에도 토요일 아침만큼은 일찍 일어나 

공원으로 향하는 것이 그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아내가 살아있던 시절부터 이어온 걸음이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새 소리가 먼저 맞이했다.

아직 이름 모를 새였다.

그는 평생 새 이름을 외우려 하지 않았다.

이름이 없어도 노래는 아름다웠다.

이름을 알게 되면 오히려 그 울음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걸었다.

벚꽃은 이미 졌고 초록이 밀고 올라오는 4월이었다.

가로수 사이로 아침 햇살이 기울어 내렸다.

그 빛이 잎새마다 다른 각도로 닿았다.

하나같이 같은 초록인데, 

빛을 받으면 전부 다른 색이 되었다.

 

그날 아침 그는 성경 앱을 열었다.

매일 말씀 한 구절을 받는 기능이 있었다.

화면에 뜬 것은 로마서 3장 23절이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표준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그는 잠시 멈추었다.

이 구절을 처음 읽었던 것이 언제였던가.

젊은 날이었다.

그때의 그는 이 문장을 읽으며 코웃음을 쳤다.

신학적 논리의 억지 구성,

권력을 위한 교리.


그렇게 치워두고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걸어왔다.

그런데 지금 이 구절이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에 부쳐두었다가 이제야 도착한 편지처럼.


그는 다시 걸었다. 생각이 따라왔다.

 

지난 2년간 그는 AI를 공부했다.

명예교수회에 봉사를 하면서 

회원들에게 인공지능을 가르쳤다.


ChatGPT, Gemini, Claude. 

처음에는 세 가지가 모두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 아래 동일한 것을 하는 기계들.

그런데 달랐다.


ChatGPT에게 부탁해 얻은 결과를 

Gemini에게 똑같이 기대했을 때,

Gemini는 답을 주되 같은 답이 아니었다.

Claude는 또 달랐다.


어떤 것은 논리에 강했고,

어떤 것은 감수성에 강했다.


어떤 것은 속도였고 어떤 것은 깊이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실망스러웠다.

왜 하나같이 같지 않은가.


하지만 어느 날 그는 멈추어 생각했다.

다르다는 것은 결함인가.

아니면 본래의 모습인가.


그 물음이 공원 산책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제 2 장 표준이라는 이름의 착각


워크숍 강의실, 이틀 뒤

강의실 안에 열두 명이 앉아 있었다.

모두 정년을 넘긴 분들이었다.

전직 교수, 공무원, 기업인.

흰머리가 많았고 앞줄에 앉은 이는 

보청기를 끼고 있었다.


기현은 노트북을 연결하며 화면을 열었다.

AI 실습 워크숍, 여섯 번째 강의.


"오늘은 ChatGPT와 Claude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그는 타이핑했다. 질문은 간단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ChatGPT가 먼저 답했다.

조리 있고 체계적인 문장이었다.

관계, 성취, 건강, 의미. 

네 가지 항목이 번호를 달고 내려왔다.


Claude는 달랐다.

답하기 전에 물었다.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먼저 알고 싶다고.

강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수업이 끝난 뒤 박춘식 전 교수가 남았다.

경제학을 가르쳤고 정년 후 홀로 지내는 분이었다.

그는 천천히 물었다.


"강의할 때마다 같은 내용을 설명하시잖아요.

그런데 저는 따라가다가 자꾸 놓칩니다.

제가 둔한 건가요?"


기현은 잠시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아니라고,

충분히 잘 하고 계신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선생님의 하드웨어가 다른 겁니다."


"하드웨어요?"


"AI를 보면요. 

ChatGPT와 Claude는 같은 인공지능이지만 

학습 방식이 다르고 강점이 다릅니다.

그렇다고 하나가 우월하고 

하나가 열등한 게 아닙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놓치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시는 겁니다."


박 교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렸다.


"다른 방식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기현은 창밖을 보았다.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모두 같은 불빛인데,

저마다 다른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는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이 처음 강단에 섰을 때,

학생들을 같은 그릇으로 보았던 시절.


같은 강의를 들으면 같은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고 믿었던 시절.

얼마나 오만한 전제였던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표준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그 구절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다른 각도로.

 


제 3 장 못과 자석


서재, 늦은 밤

기현의 서재는 작았다.


아파트 베란다를 개조해 만든 공간이었다.

책장 두 개, 책상 하나, 낡은 의자.

벽에는 아내가 찍어준 사진 한 장이 걸려 있었다.


젊은 날의 그가 강단에 서 있는 사진이었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얼굴.

지금의 그가 보기엔 조금 낯선 사람 같았다.


그는 노트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요즘 그는 디지털 기기보다 손글씨를 더 신뢰했다.

화면에 쓴 것은 어딘가로 흘러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종이에 쓴 것만이 남는다고 믿었다.

 

그는 오늘 강의에서 있었던 일을 적었다.

박춘식 교수의 눈빛.

하드웨어라는 말을 듣고 잠시 멈추었던 그 얼굴.


그리고 적었다.

못이 자석에 닿으면 자성을 띤다.

오래 닿아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가 어릴 때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다.

쉬운 말로 어려운 것을 가르치는 재주가 있었다.


기현이 교수가 된 것도,

결국은 아버지를 닮으려 했던 먼 길이었는지도 몰랐다.


못은 자석 옆에 잠깐 두어도 자성을 얻지 못한다.

마찰이 있어야 한다.

닿아있어야 한다.

반복이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못도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힘을 갖는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이 나이에 성경을 다시 읽는 것도 

그런 마찰의 시간일까.


젊은 날 무시했던 구절들이 

나이가 들면서 다시 말을 거는 것도,

그동안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나를 바꾸어놓았기 때문일까.

 

그는 로마서 3장 23절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앞 구절부터 천천히 읽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젊은 날에는 이 구절이 억압처럼 들렸다.

너는 부족하다.

너는 미치지 못한다.

그런 선고처럼.


그런데 지금은 달리 읽혔다.

이것은 선고가 아니라 전제였다.

아무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의 확인.


그리고 그 확인 뒤에 오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현은 그 접속사에서 오래 머물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접속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그는 생각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버리지 않는 시선.

그것이 그 짧은 말 안에 담겨 있었다.

 


제 4 장 각자의 기준으로


요양원 방문, 그 주 목요일

그는 한 달에 한 번 요양원을 찾았다.


그곳에 최무열 교수가 있었다.

오십 년 지기.

함께 대학원을 다녔고,

같은 학과에서 가르쳤다.


치매가 시작된 것은 삼 년 전이었다.

지금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다.


기현이 들어서자 최무열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

창밖에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눈은 먼 곳을 향했지만,

어쩌면 아무것도 보지 않는 눈이었다.


"무열아."


반응이 없었다.

기현은 옆에 앉았다.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침묵 속에 무언가 온전한 것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무열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자네는 누구인가."


기현은 대답했다.


"기현이야. 윤기현."


최무열은 잠시 그를 들여다보았다.

무언가를 더듬는 눈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 기현이."


그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최무열의 얼굴에 무언가가 스쳤다.

빛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기현은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감각으로는 알아본다.


이름이 아니라 온기로.

논리가 아니라 느낌으로.

그것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그

것이 또 다른 방식의 인식인가.

 

돌아오는 길에 기현은 오래 걸었다.


AI를 가르치면서 그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였다.


같은 입력이 같은 출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는 것.


최무열은 지금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의학적 기준으로 보면 퇴화.

하지만 그 퇴화 안에서도 그는 온기를 느꼈고,

창밖을 바라보았고,

때로는 미소를 지었다.


'이상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도덕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생각이 걷는 발 아래에 깔렸다.


어쩌면 하나님이 인간을 바라볼 때도 

이렇게 보실지 모른다고 기현은 생각했다.

하나님의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각각의 특성 안에,

각각의 방식으로 빛나는 것이 있다.


그것을 버리지 않는 것.

그 빛나는 것 하나를 살리는 방향으로 길을 여는 것.

협박이 아니라 초대.

 


제 5 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원, 다시 토요일 아침

한 주가 지났다.


기현은 다시 공원을 걸었다.

같은 길이었지만 초록이 한 주 더 짙어졌다.

햇살도 달랐다.

같은 아침이되 다른 아침이었다.


그는 걸으며 생각의 실을 이었다.

삼십 년을 가르쳤다.

대학에서 이십칠 년, 명예교수로 활동하며 삼 년.

그 긴 세월 동안 그가 전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지식이었다. 논리였다. 체계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지 못했다.


'각 사람은 다르다.

그 다름이 가치이다.'


그것을 말하는 데 일흔두 살이 걸렸다.


공원 벤치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팔십은 넘어 보였다.

무릎에 비닐봉지를 올려두고 

비둘기에게 과자를 던지고 있었다.


비둘기들이 모여들었다.

크기도 다르고 색도 조금씩 달랐다.

한 마리는 다리를 절었다.

노인은 다리 저는 비둘기에게 먼저 과자를 던졌다.


기현은 그것을 보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 장면이 왜인지 가슴 한편을 눌렀다.


노인은 비둘기를 골라 먹이지 않았다.

먼저 달려오는 것에게 주지 않고,

오히려 늦게 오는 것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다리가 불편한 것이 늦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현은 벤치 옆을 지나며 가볍게 목례했다.

노인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계속 걸었다.

발소리가 자갈 위에서 조용하게 났다.

새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름 모를 새.


그는 생각했다.

나는 오늘 무엇을 위해 걷는가.


건강을 위해서인가.

습관이어서인가. 아니면,

이 걸음 안에서 무언가가 

내 안에서 바뀌고 있기 때문인가.


못이 자석에 닿는 시간.

오래 닿아있는 시간.

그것이 쌓여야 한다.


'나의 본성이 하나님의 신성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도,

이런 아침들이 쌓여야 가능하다.'


그 문장이 스스로 왔다.

그는 적으려 했지만 펜이 없었다.

괜찮았다.

이런 문장은 쓰지 않아도 남는다.

 


제 6 장 각자의 빛으로


봄 저녁, 서재

저녁이 되었다.


기현은 서재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천천히 오늘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의 오래된 방식이었다.


하루가 끝날 때 그날의 생각을 

손으로 옮겨 두는 것.

훗날 누군가 이 노트를 읽는다면,

한 노인이 이런 것들을 생각했구나 

하고 알아주면 충분했다.

그는 적었다.

 

'ChatGPT와 Gemini와 Claude는 다르다.

박춘식 교수와 최무열 교수와 나는 다르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도 다를 것이다.

그 다름이 결함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다시 배웠다.'


그는 잠시 펜을 내려놓았다.

창밖을 보았다.

아파트 맞은편 동에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각각의 창에 각각의 삶이 있었다.

누구는 저녁을 차리고,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혼자 앉아 어두운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었다.


모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나 각각의 창에서 

각각의 빛으로 빛나는 사람들.

 

기현은 다시 펜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줄을 적었다.


'오늘 하루가 나의 욕심을 위한 하루였는지,

나의 명성을 위한 하루였는지,


아니면 각 사람의 다름을 

빛나게 하려 한 하루였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이 질문을 가지고 잠드는 것으로,

오늘은 충분하다.'


그는 노트를 덮었다.

불을 껐다.

서재가 어두워졌다.


창밖에는 아직 불빛들이 있었다.

저마다의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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