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의도는, 그(주님)과 함께 있는 대신,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함으로써,그녀가 어떤 악함에 빠졌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녀는 오해를 받고, 잘못 판단되었습니다; 그녀는 마치 죄가 있고, 사악한 마음을 가진 여자인 것처럼, 치욕과 잘못된 비난들로 몰매를 맞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로부터 욕설을 듣고 학대를 당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웃옷(베일)을 그들의 손에 뻇기고, 탈출하기 위해 힘껏 노력했습니다 (참조, 창 39:12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Redhidh는, 아랍어로 ridha처럼, 어깨에 걸쳐진 격자 무늬 같은 윗옷이라고 Aben Ezra(유태인 현자, 1092년 톨레도에서 태어난 유명한 스페인 랍비)는 말합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식물의 뿌리로 부터 "넓게 또는 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아마도 어깨에 두른 의상 위에 입는 "얇고 가벼운 겉옷", 여름옷, 망토와 비슷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녀의) 꿈을 이렇게 설명하고, 주변에 있던 여성들과 관련하여, 이 시점에서 결론을 내린다면,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은 것을 위해 도입되었다고 제안합니다.
신부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몫인) 50%를 다 채우도록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부족함을 크게 의식하여, 그녀는 자신의 꿈에 나타난대로 행동했을 수 있습니다.
사랑의 부족함이 그녀의 영혼에 들어가서, 그녀를,내적인 슬픔과 자기-비난을 동반하며, (마음을) 병들게 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그렇게 행동하며, 실제로 그녀의 남편을 그렇게 (차갑게) 대접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주변의) 동료들에게, 자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에게 말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영혼이 그리스도안에서 기쁨을 잃어버릴 때, 그 영혼은, 두려움과 자기-비난의 먹이감이 되고, 심지어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과 교회를 수호하는 사람들로부터도비난의 먹이감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종교가 우리에게 자발적인 기쁨이 되지 않을 때,우리는 삶의 활동적인 일에서 조차, 주변에 있는 성실한 신자들에게 오해를 받는 방식으로 수행하기가 쉽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 하는 바로 그런 노력들도, 우리에게 비난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종교적인 낙담에 대처해야 했던 기독교 목사라면, 누구나, 신부의 이런 꿈을 아주 잘 이해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찾는 사람들을, 종종 때리고, 상처를 입히고, 심지어 명성과 존경의 옷을 빼앗아 버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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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tention is to show into what evil she fell by having to seek her beloved instead of being with him. She is mistaken and misjudged; she is smitten and wounded with reproaches and false accusations, as though she were a guilty and evil minded woman. She is subjected to abuse and ill treatment from those who should be her guardians. She had hard work to escape, leaving her robe behind her (cf. Genesis 39:12).
The redhidh, like ridha in Arabic, is a plaid-like upper garment thrown over the shoulders - so says Aben Ezra; but it is derived, no doubt, from the root "to make broad or thin," to spread out - perhaps, therefore, "a thin, light upper robe" which was worn over the chiton, a summer overdress, a cloak (LXX., θερίστρον: Jerome, pallium; Luther, Schleier).
If we take the dream thus described, and which seems to conclude at this point, as related to the surrounding ladies, then we must suppose that it is introduced for the sake of what follows.
The bride feels that she does not love her beloved one half enough; she is so conscious of deficiencies, that she might even have acted as her dream represented. It had entered her soul and made her ill with inward grief and self-reproach. She might so act, she might so treat her husband. So she adjures her companions to tell him how much she loves him. The spiritual application is not difficult to see.
When the soul loses its joy in Christ, it becomes the prey of fears and self accusations, and even of reproaches from Christ's servants and the guardians of his Church.
For when our religion ceases to be a spontaneous delight to us, we are apt to carry on even the active work of our life in a manner to be misunderstood by sincere believers around us.
Yea, the very efforts we make to recover peace may bring reproach upon us. Any Christian minister who has had to deal with religious despondency will quite understand this dream of the bride's. We may often smite and wound, and even deprive of the garment of reputation and esteem, those who are really seeking for Christ, because we have misunderstood them.
제 1 장 강물은 기억한다 이른 아침, 낙동강 하류의 물안개는 언제나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각, 강 위로 흰 안개가 낮게 깔리고, 그 안개 속에서 물새 한 마리가 소리 없이 날아올랐다. 강영준은 제방 위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일흔두 해를 살아오는 동안 이 강을 수백 번 바라보았지만, 강은 매번 처음 보는 얼굴로 그를 맞았다. 그는 지팡이를 짚지 않았다. 아직은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무릎이 쑤시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새벽 강변을 걷는 것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유일한 의식이었다. 강영준은 대학에서 삼십오 년을 가르쳤다. 국문학을 가르쳤고, 시를 썼으며, 한때는 제법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년퇴직 이후 삼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제자들은 각자의 삶 속으로 흩어졌고, 아내는 이 년 전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은 서울에서 바쁘게 살고 있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라고 그는 생각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 말하지만 들리지 않는 것. 그날 아침, 강변 벤치에 앉아 그는 오래된 성경을 펼쳤다. 낡은 가죽 표지가 손에 익은 물건처럼 손바닥에 맞았다. 그것은 아내가 결혼 초에 선물한 것이었다. 페이지마다 아내의 연필 메모가 남아 있었다. 작고 단정한 글씨들이 여백에 가득했다. 그는 로마서를 펼쳤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그 문장 앞에서 그는 오랫동안 멈추어 있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 그 말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가슴 안쪽을 건드렸다. 그는 평생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막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 아침처럼 막막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강물은 소리 없이 흘렀다. 물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면서 건너편 갈대밭이 천천히 모...
판단과 구원 사이에서 제1장 — 판사의 눈 봄이 청송 땅에 내려앉는 방식은 조용하고 느렸다. 산벚꽃은 한꺼번에 피지 않았다. 능선 아래쪽부터 한 그루씩, 마치 차례를 기다리듯 피어올랐다. 강의원은 마루에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손에는 식어가는 보리차 한 잔이 들려 있었고, 눈빛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라 습관에 가까웠다. 그는 서른두 해 동안 판사였다. 판사의 직업은 보는 것이다. 정확하게, 빠짐없이, 감정을 제거하고. 강의원은 그 일을 잘했다. 아니, 탁월했다. 그의 판결문은 간결했고 논리는 빈틈이 없었다. 동료들은 그를 '철판(鐵判)'이라 불렀다. 쇠처럼 단단한 판단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그 별명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오랫동안. 은퇴 후 그는 대구 아파트를 떠나 청송으로 내려왔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지 삼 년째였고, 자식들은 서울과 부산에 흩어져 있었다. 산이...
Songs 2:13 13 The fig tree putteth forth her green figs, and the vines with the tender grape give a good smell. Arise, my love, my fair one, and come away. 13 Fig trees are bearing fruit, while blossoms on grapevines fill the air with perfume. My darling, I love you! Let's go away together.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fig (무화과) grape (포도) * [ GoTo-> 1:1 / 2:1 / 3:1 / 4:1 / 5:1 / 6:1 / 7:1 / 8:1 ] * [ Before <--- ---> After ] --------------------------------------------------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 한 모든 나무에서 가장 쓸모가 없습니다 . 그것으로는 거의 아무것도 만들 수 없습니다 ; 당신은 포도덩굴에서 냄비를 걸 수 있는 충분한 나무를 자를 수 없을 것입니다 ; 당신은 그것을 가구로 만들 수도 없으며 , 건축 목적으로도 거의 사용할 수 없습니다 .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으면 , 불에 태워서 제거됩니다 . 여러분 모두는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 또 그리스도 안에 거주하지 않는 한 , 어떤 열매도 맺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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